한국에서 게임만큼 양면적인 대접을 받는 문화산업은 드물다. 국내 게임시장은 2008년부터 해마다 10% 이상 성장하며 2012년 9조7,525억원, 지난해 1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한국이 수출한 문화콘텐츠 중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58%였다. 프로 게임 리그가 생긴 지도 10년이 넘어, 이제 프로 게이머가 장래희망이라는 청소년도 적지 않다. 반면 게임은 청소년의 건강과 정신을 병들게 하는 중독물로, 또 폭력성을 심화해 학교폭력을 낳는 주범으로 손가락질 받는다.
시작은 2010년 여성가족부가 입법 발의한 '셧다운제'였다.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해 16세 미만 청소년은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할 수 없도록 한 셧다운제는 각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1년 11월 20일 시행됐다. 성인 인증만 거치면 뚫리는 허술한 강제성과 시차 불문 해외 거주 한국 청소년에게도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등 현실적 비판도 비등했다. 2012년엔 스타크래프트2 국제 경기에 출전한 15세의 한국 프로게이머가 경기 도중 셧다운제에 걸려 시합을 중도 포기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른바 '게임 중독'이 뇌 손상과 우울증을 야기한다는 일부 정신과 의사와 시민단체의 주장은 작년 4월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이하 중독예방관리법)을 통해 게임을 국가 차원에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구체화 됐다. 이 법안은 알코올, 인터넷 게임, 도박, 마약을 이른바 '4대 중독 물질'로 지정, 국가중독관리위원회를 신설해 생산과 유통, 판매를 관리하고 광고 및 판촉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중독예방관리법 관련 공청회에서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996년 미국의 심리학자 킴벌리영이 물질 중독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는 인터넷 중독이라는 새로운 병리적 현상을 600명의 증례분석을 통해 보고한 이래 국내외에서 인터넷 중독과 관련한 1,000여 편의 논문이 보고되고 있다"며 "게임업계에서 출연한 기금으로 운영되는 게임과몰입상담치료센터에서는 최근 4년 동안 100명이 넘는 사람이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중독예방관리법 공청회에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미국정신의학학회의 DSM-5(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람)에 따르면 인터넷 게임 장애를 공식적 정신장애로 분류하지 않고 있고, 추가 연구들로 검증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객관적인 근거자료로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게임을 중독물질 및 행위로 정의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게임을 '악'으로 바라보는 인식 안에서 청소년은 미숙한 통제대상일 뿐이다. 이병찬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은 "(잘 들여다 보면) 부모는 자식이 게임을 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청소년만 빼 놓고 언론 정부 국회 학교 학부모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별을 보고 등교해 별을 보고 귀가하는 청소년이 유일하게 또래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온라인 게임 공간이라는 사실, 청소년의 수면권을 방해하는 건 게임이 아니라 입시경쟁 위주의 교육 환경이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는 비판이다. 게임개발연대의 김종득 대표는 한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종교 단체의 게임에 대한 증오와 학부모들의 게임에 대한 공포, 국회의원들의 표심을 좇는 경향이 뭉쳐서 게임규제론이라는 커다란 흐름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정신과 의사 단체가 가세를 한 것이 현재의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중독예방관리법을 대표발의한 신의진 의원도 10년 전 게임 중독 아이를 상담한 내용으로 펴낸 책에서 '게임 중독 원인은 게임이 아닌 가정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며 "그들도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게임 개발자 입장에서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중독예방관리법 제정 움직임에 대응해 문화 콘텐츠 전반의 종사자들은 지난 해 11월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결집했다. 위원장을 맡은 만화가 박재동씨는 발족식에서"일상적으로 쓰이는 중독이란 '매혹' 의 다른 말이다. 이 매혹은 수용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이것을 과연 국가가 정해줘야 하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스스로와의 싸움이 콘텐츠의 매력이고 인생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는 나아가 그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다.(…) 문화에 매혹된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이 치유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문화인 게임을 규제하는 것은 학생들의 안식처를 빼앗아가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는 어떻게 아이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