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하면서 부담스럽고 책임감도 많이 느낍니다. 이런 연기를 언재 또 해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보람 있기도 해요."
배우 한지혜(32)가 눈물을 보였다. 30대 유부녀 대표 여배우로 브라운관 활동이 두드러진다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도중이었다. 최근 30대 유부녀 여배우들이 안방극장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있다. KBS 주말극 '참 좋은 시절'의 배우 김희선, SBS 월화극 '신의 선물-14일'의 배우 이보영, MBC 수목극 '앙큼한 돌싱녀'의 배우 이민정 등이 그렇다.
쟁쟁한 여배우들과 경쟁하느라 한지혜에게도 남모를 중압감이 있었나 보다. 28일 오전 경기 평택의 촬영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보다 어릴 때, 뭣 모르고 연기할 때는 그저 재미있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젠 책임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현재 재미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열심히 연기하고 있는데, 시청률 수치를 보고 판단해주시잖아요. 믿을 것은 열심히 연기하는 길 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지혜는 MBC 주말드라마 '금 나와라 뚝딱!'(2013), '메이퀀'(2012)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캔디형' 여주인공을 완벽히 소화하며 25%가 넘는 시청률로 '시청률의 여왕'이라는 닉네임까지 얻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그는 17일부터 방송된 KBS 월화극 '태양은 가득히'에서 약혼자의 죽음과 아버지의 비리 등을 알게 되는 복잡한 감정의 여주인공 한영원을 맡았지만, 시청률 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캔디형' 캐릭터를 버리고 내면 연기가 중요한 비련의 여주인공을 택한 그였지만 시청률이 5% 내외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마음에 생채기를 낸 듯하다.
'태양은 가득히' 속에서 그의 내면 연기는 다른 어떤 배우보다 어렵다. 받아들일 수도 없는 약혼자의 죽음, 살인자에 대한 원망,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등 복잡미묘한, 여러 감정들을 차분히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 순간 폭발하는 감정을 다스리면서 연기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울거나 격하게 소리지르며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이 많아요. 스스로 그 상황에 맞도록 연기하려고 애쓰죠. '이럴 때 나라면 어떤 마음일까', '왜 울어야 할까' 등의 자문을 하면서 정확한 감정을 잡아가려고 해요."
그래서일까. 평소 호탕하게 웃고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그이지만 극중 역할을 위해 자제하고 있다고 한다. "역할 자체에 깊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표현하려고 평상 시에도 떠들거나 웃는 걸 자제하고 있습니다. 캐릭터에 집중을 많이 하고 있어요."
오죽했으면 함께 출연하는 배우 조진웅이 "내가 한영원 캐릭터였다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말했을까. 힘든 감정 장면으로 인해 한지혜는 몸무게가 2~3kg 줄었고, 그 좋아하던 필라테스 운동도 못하고 있다. '캔디형' 캐릭터에서 벗어나 이미지 변신을 꾀하려 했던 그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였으리라.
'태양은 가득히'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약혼자를 잃은 재벌의 딸 한영원과 그 약혼자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정세로(윤계상)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윤계상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한영원 가족에게 복수하려고 이은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1인2역. 그 속에서 한지혜는 아버지, 정세로, 이은수 등에게 각기 다른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 환하게 웃는 한지혜의 모습은 당분간 보기 어려울 듯하다.
"16부작은 굉장히 짧아요. 이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느냐가 숙제입니다. 진정성이 모자라면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힘든 연기가 나올 수 있어요. 그 점을 유념하면서 연기하고 있으니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한지혜는 "남편이 할머니가 폐지 줍는 드라마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더라"며 "인간미가 넘치는 드라마라 시청률도 분명히 올라갈 거라고 응원 많이 해준다"고 말했다. KBS 제공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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