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직업이 정치인과 축구감독이란 이야기가 있다. 이들 분야만큼은 국민이 저마다 웬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각종 훈수와 비판을 쏟아낸다는 점에서 비유됐다. 특히 선거나 월드컵 등 큰 판을 앞두고는 누구든지 전문가로 빙의돼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면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한 서울시장 선거가 단연 화제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야권이 후보단일화를 해야 유리한 것 아니냐는 논리를 편다.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민주당에게 양보한다면 박원순 시장이 이기고, 3파전이면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란 일반론이다. 야권연대가 필승 공식은 아니지만 분열은 필패라고 강조하면서 내게 동의를 구하곤 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그간 선거에서 '후보단일화=당선'이란 구도가 통용되지 않았던 때는 의외로 많다. 옛날 자료를 들춰보자. 3파전이 가장 치열했던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조순 후보(42.4%)는 무소속 박찬종(33.5%), 민자당 정원식 후보(20.7%)를 따돌렸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자민련까지 나서 3파전으로 치러진 충남ㆍ충북 지사 선거에서도 모두 민주당이 승리했다. 반면 여야가 1대 1로 맞붙은 경기지사 선거는 한나라당이, 진보신당이 나서긴 했지만 사실상 맞승부인 서울시장 선거도 한나라당이 이겼다. 92년 대선도 보수진영은 김영삼-정주영으로 분열됐지만 승자는 김영삼 후보였다.
이쯤 되면 야권의 후보 단일화에 대해 의문점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 막판 3자 구도로 레이스가 펼쳐질 때 박근혜 후보는 40% 안팎, 문재인ㆍ안철수 후보는 각각 22~25%의 지지율을 보였다. 때문에 후보 단일화만 성사되면 당연히 야권이 이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산술적 표 계산에 의한 착시 현상이다.
제3의 후보에 대한 지지는 대개 부동층이나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는 계층에서 많이 나온다. 때문에 야권 후보 연대가 이뤄지면 적잖은 표들이 부동층으로 돌아가거나 오히려 여당 쪽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또 상대적으로 위기 의식을 느낀 여권 성향의 표들은 더욱 결집한다. 야권 후보 단일화의 마이너스 효과다.
그간 우리 유권자들의 전략적 표심은 절묘했다. 대선에서 이긴 정당에게 다음 지방선거에서는 표를 주지 않는 교차 표심이 거의 매번 이뤄져 왔다. 정권의 중간평가에 따른 견제 심리다. 이번 선거도 큰 틀에선 박근혜 정부 1년 반에 대한 평가의 장으로 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분명 야당이 우위를 보여야 하는 구도인데 정작 바닥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느낌이다.
지금의 민주당을 보자. 당 지지율은 여당의 절반 수준이고 새정치연합에게도 한발 뒤처져 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25일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를 보면 양자대결에서 박 시장이 정 의원에 우위에 있지만 3자 대결에서는 오히려 정 의원이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자 민주당은 또다시 후보 단일화에 잔뜩 눈독을 들이는 분위기다. 여기에 야권 지지층도 두 정당간 연대를 더욱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을 향해서는 서울에 후보를 내는 것은 여당을 돕는 이적행위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야당 후보들이 자강론 보다 단일화에만 공을 들인다면 부동층의 마음을 끌어 올 수 없다는 점을 지난 선거에서 익히 경험했다. 어떤 정책으로 여당을 견제하면서 보다 건강하게 사회를 이끌기 위한 청사진 제시가 없는 선거라면 아무리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더라도 지난 대선 때와 같은 결과를 답습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야권 입장에선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다고 축배를 들 상황도, 3파전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낙담할 상황도 아니다. 그보다 민주당은 왜 지방선거에 이겨야 하는지, 박 시장으로선 왜 재선에 성공해야 하는지를 무엇보다 먼저 보여줘야 한다. 유권자의 입장에서 이런 주문은 절박하고 현실적이다. 후보단일화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종종 역효과를 부른다.
염영남 논설위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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