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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과 아지랑이

입력
2014.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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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시집 원고를 정리하기 위해 지인에게 제주의 서귀포 표선이라는 곳에 작은 농가를 하나 빌려 머물다 온 적이 있다. 낯에는 따사로운 해변의 미풍을 받으며 걸었고 저녁부터는 시를 지었다. 시집 원고를 핑계 삼아 떠나왔지만 일을 좀 내려놓고 혼자서 잠시나마 숨어지내기 좋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제주도와 꽤 오랜 인연이 있다. 대학에 낙방하고 방황하던 이십 대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제주로 달려가 몇 개월간 목장에서 일한 적도 있다. 군입대를 피해 볼 요량으로 벌크선을 타고 해외로 나가는 선원이나 되자는 심사로 방을 하나 얻고 뱃일을 물색하면서 술로 어슬렁거린 적도 있다. 결국, 결핵 진단을 받고 그곳을 다시 떠나 돌아와야 했지만. 내가 처음 연극을 연출한 곳도 제주도의 모슬포라는 곳인데 그곳은 우리나라 중에 가장 바람이 심하고 거세다는 곳이라고 들었다. 나는 그곳에서 제주의 4ㆍ3항쟁을 다룬 작은 시극을 연출했다. 이후로도 수차례 전시니 공연, 출간행사를 하게 되면서 제법 지인들도 생겼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주도는 내게 청춘의 삶을 많이 들켰던 순간들의 풍경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곳을 떠돌면서 돌아보았던 제주도의 낯선 풍경들이며 비린 구석들은 아직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산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시리게 물들어 있는 한 풍경이 있는데 봄이면 어김없이 제주 곳곳에 흐드러지게 퍼져있는 유채꽃이다. 유채꽃의 유래는 이집트 젊은이들에게 "사랑한다면 지금 말하라. 내일이면 그 사랑이 남이 되어 버릴지 모른다." 는 속뜻을 품고 있다. 유채꽃의 노랑은 아지랑이처럼 번져간다. 어린 시절 크레파스를 처음 선물 받았을 때 노랑으로 내가 표현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도화지 위에 어머니의 병든 얼굴색과 어떤 이름 모를 새들의 몸에 노랑을 물들여주곤 했다. 하지만 노랑은 언제나 그 환함 속에 아지랑이를 품고 있던 색으로 기억된다. 멀리서 보면 울렁울렁 거리는 듯한 유채꽃은 한 송이 한 송이 있을 때는 그 빛깔의 지독을 바라보기 어렵다. 그들은 나란히 모여서 수런거리는 꽃들이다. 특이 봄볕 속에선 이 노랑의 화원은 이국의 어떤 화가의 풍경에서 보았던 빛깔 같기도 하며 노트를 펼쳐두고 이 노란 꽃들의 꽃물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궁금해지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유채꽃은 저 혼자 흐드러지게 가득 피어 있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 속에서만 제 빛깔의 고유성을 보존하고 사는 것 같다고 여겨보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조금만 세심함을 놓치면 노랑은 우리가 쉽게 어울리기 어려운 색인 것이다.

제주도 유채꽃길을 걷다 보면 첫째로 그 환한 노란색의 아지랑이들에게 어지러움을 느끼고, 둘째로 그 특유의 시큼하고 상쾌한 꽃과 풀냄새에 감복한다. 유채꽃과 줄기들에서 올라오는 맑은 물기의 냄새는 봄꽃의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든 상쾌함이 있다. 상위의 신선한 봄나물들처럼 유채꽃은 봄의 자연에만 허락되는 청량함이 있다. 아마도 사람들이 차를 몰고 가다가 멈춰 서서 유채꽃밭을 찍고 자신의 셔터로 기록하는 순간은 그 청량하고 맑은 꽃 냄새를 그냥 못 지나치기 때문이리라. 유채꽃밭으로 들어가 코피를 쏟았던 청춘은 그때 너무나 맑은 그 냄새들을 잊지 못한다.

유채꽃 길 중에 가장 내가 마음에 들고 자주 찾는 쪽은 언덕과 구릉에 피어있는 유채꽃들이다. 언덕이나 구릉에 무더기로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이 유채꽃의 생식이야말로 유채꽃의 진경이다. 햇살의 편에서 이 유채꽃을 보면 너무나 환하게 울렁이는 아지랑이의 입구이고 언덕의 편에서 이 유채꽃의 편을 들면 문득 다른 행성의 표면에 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몽골의 고비사막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멀리 황량한 언덕, 구릉 너머에 저렇게 환한 노란 꽃들이 넘실거리는 것이 지구에서 흔히 보지 못했던 풍경처럼 느껴지기도 했거니와 그보다 더한 것은 그 넘실거리는 노랑의 세계는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식의 바깥에서 한 세계가 눈부신 어금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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