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투자한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배임ㆍ횡령에 연루된 경영진의 이사 선임에 반대하는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려는 시도에 제동이 걸렸다.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회(위원장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는 28일 사외이사 관련 규정을 강화한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안을 심의ㆍ의결했다. 개정 지침은 사외이사의 성실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이사 재직연수 제한을 '특정 회사 10년'에서 '특정회사 및 계열회사를 포함한 10년'으로 강화하고, 이사회 출석률 60% 미만일 경우 사외이사 선임을 반대할 수 있는 현행 기준을 75% 미만으로 높였다.
그러나 이날 핵심 안건이었던 '비위 관련 이사 선임' 반대 등은 보류됐다. '기업가치 훼손이나 주주 권익의 침해 이력이 있는 자'로 모호하게 돼 있는 현재의 이사선임 반대 기준을 '횡령ㆍ배임으로 1심 판결을 받은 인물 또는 객관적으로 명백한 횡령ㆍ배임 혐의로 기소된 인물'로 구체화하는 내용이다. 또 주주총회가 열리기 전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의 원칙적 공개를 의무화한 지침의 개정도 보류했다.
기금운영위의 권종호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장(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국민적 합의가 중요한 사안인데 국민연금 가입자를 대표하는 노동계 추천 위원들이 위원회에 불참, 결정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경찰이 민주노총에 강제 진압한 것에 반발해 정부가 관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기금운영위는 이들 지침을 5월로 예정된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으나 통과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날 보류 결정이 정부가 국민의 노후비용인 국민연금으로 민간기업의 경영을 간섭하려 한다는 재계의 비판을 의식한 결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채이배 경제개혁연대 실행위원은 "배임ㆍ횡령 혐의를 저지른 기업총수들에 대한 법원의 엄중한 판결 등 최근 사회분위기를 감안하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현재 426조9,545억원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83조9,381억원을 국내증시에 투자하고 있는 '큰 손'이다. 포스코(7.5%), 네이버(8.98%) 등의 최대주주이고, 삼성전자 지분은 7%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94%)보다 2배 이상 많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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