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문명은 쓰레기 위에 쌓아 올린 거대한 탑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조상의 쓰레기를 뒤져 과거 문명의 자취를 발견하고 과학 발달의 증거들을 수집하곤 한다. 가야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한국 최초의 유적 발굴지인 김해 패총이, 그리고 고대 로마의 수백 년 역사가 고스란히 쌓여 고고학자들의 성지로 불리는 로마 근교의 몬테 테스타치오가 '위대한 쓰레기 터'의 대표다.
쓰레기라는 단어가 풍기는 더럽고 비위생적인 느낌의 이면에는 삶과 뗄 수 없는 문명이 숨어 있다. 책의 저자는 중세 프랑스 파리의 배설물 가득한 거리부터 쓰레기로 재생한 인도의 가방까지, 역사를 꿰뚫는 쓰레기의 문명사를 모두 '주워 담았다'.
이 책은 인간과 쓰레기의 공생 연대기다. 마구 버리면 교수형까지 받아야 했던 중세의 쓰레기는 인간의 삶과 최대한 멀어져야 하는 숙명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쓰레기는 가축의 먹이로 부활했던 지난 세기의 혁신을 거쳐 어느새 예술과 생필품으로 되살아나 인간의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쓰레기 줍기가 생존 수단으로 엄연히 인정받는 제3세계나 빈곤국가에서 쓰레기는 재화와 같다. 책은 조직원 2만여명을 거느린 멕시코 넝마주이 갱단이 같은 처지의 넝마주이들을 착취하고 이 조직의 두목이 쓰레기를 권력으로 누리며 별장과 두둑한 스위스 은행 계좌를 챙긴 이야기를 소개하며 쓰레기가 냄새 나는 자본주의의 상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두목은 1987년 쓰레기 산에서 암살당할 당시 아내 15명과 자식 100여명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1835년 파리 멋쟁이들의 인기를 끌었던 탕플 시장에 옷을 대던 이들은 헌 옷 수집인이었다는 대목에선 쓰레기와 패션의 접점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장관이 음료수 캔과 통조림 포장용기로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니고, 인도 뉴델리의 재활용 쓰레기가 난디타 샤우니크의 디자인을 입은 채 유럽의 고급 부티크로 수출되는 현상에서는 더 이상 더러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저자는 프랑스 공공쓰레기처리 분야의 전문가답게 '쓰레기 제로'를 향한 담론도 제시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시의 쓰레기 줄이기 정책이 1996년 시작한 뒤 6년 만에 도시의 쓰레기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였다는 사례 등 다양한 쓰레기 감소책들이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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