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지방법원은 24일 2년 전 푸틴 대통령 집권 반대 시위에 참가했던 7명에게 2년 6개월~4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이 가운데 2년 6개월 형을 받은 대학생 야로슬라프 벨로소프의 죄목은 레몬 투척이었다. 이날 법원 밖에선 수백 명이 항의하다 연행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강한 러시아'를 주창하려고 마련한 축제가 드디어 막을 내렸다. 대회 내내 푸틴의 얼굴에선 환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고, 푸틴의 바람대로 러시아는 종합전적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올림픽 폐막 이후 그 미소는 금세 사라졌고, 반 푸틴 세력들에게 철퇴가 떨어졌다. 러시아 동성애자들도 소치 이후 다시 애국주의에 편승한 동성애 혐오가 기승을 부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소치의 화려함 이면에는 독립을 꿈꾸는 소수민족의 분노와 거주지역을 빼앗긴 이주민들의 설움이 숨어 있었다. 소치 올림픽은 끝났지만 러시아의 차별 받는 동성애자, 소수민족, 올림픽 때문에 쫓겨난 서민들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성애 혐오에 의한 무자비한 폭력
러시아는 지난해 미성년자 동성애 선전 금지법, 해외 동성 커플의 러시아 어린이 입양 금지법 등을 만들었다가 해외 각 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비난을 받았다. 많은 나라의 정상들로부터 개막식 참석을 거부 당하기도 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푸틴이 직접 대회 기간 소치 첫 동성애자 금메달리스트인 네덜란드의 이레인 뷔스트를 찾아가 포옹하고 축하 인사를 건네기도 했지만, 그의 동성애에 대한 유화적인 제스처는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러시아의 동성애자들은 정부가 동성애 혐오를 바탕으로 한 폭력을 공개적으로 허용한 것으로 느끼고 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소아성애 퇴치'라는 조직의 경우 소아성애자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동성애자들을 학대하고 있다. 동성애자 단체에선 '동성애 선전 금지법' 같은 제도가 이들의 공격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러시아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15년 내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러시아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센터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동성애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질병이나 정신질환이라고 답변한 응답자는 35%에 달했고, 성적 타락이나 악습이라고 답변한 이들도 43%나 됐다. 동성애를 성 정체성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은 12%에 불과했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동성애 선전 금지법 같은 법들이 러시아를 서구 문명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의 조국을 구원해줄 것이라며 반겼다. 이런 법이 생기기 전에도 러시아에서 동성애에 대한 차별, 편견은 뿌리 깊다. 소련 시대에는 동성애 자체가 범죄행위로 치부돼 징역 5년이 부과됐다.
모스크바의 직장인인 그레프 라토니크(30)는 동성애자란 이유로 모르는 사람에게 얻어맞은 적도 있고, 인권활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는 빈부 격차와 부패, 인권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한 문제에서 국민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적이 필요하며 그것이 지금 우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독립 갈망하는 소수민족의 분노
러시아는 지난 14일 소치 올림픽을 반대해온 소수민족인 체르케스의 지도자 아스케르 소흐트를 체포했다. 러시아 경찰은 7일에도 남부지역인 날치크 등에서 올림픽 반대 시위를 하던 체르케스 활동가 수십 명을 검거했다.
체르케스 민족은 한때 캅카스와 북해 북쪽을 지배한 소치의 오랜 토착민이다. 그러나 1817~1864의 캅카스 전쟁에서 패하면서 이 지역을 제정 러시아에 넘기게 됐다. 전쟁 후 러시아는 체르케스인을 대량 학살하고 수십만 명을 강제로 추방했다. 오늘날 체르케스 민족은 유럽과 미국 터키 시리아 이스라엘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체르케스인들은 이번 소치 올림픽에 분노하는 건 소치가 체르케스 민족의 오랜 고향이란 점을 인정해주지 않아서라고 주장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캐나다 밴쿠버는 2010년 동계올림픽에서 원주민 대표자들을 초청해 각국 정상과 비슷한 대우를 했지만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 체르케스인들은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푸틴 정권이 이렇게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원주민의 불만이 폭발하고 이 지역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소치와 그리 멀지 않은 볼고그라드에서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에 의한 연쇄테러가 발생했다.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 관계 기관은 크게 긴장했고, 다행히 올림픽 기간 중엔 단 한 건의 테러도 발생하지 않았다.
소치가 있는 북캅카스 지역은 '러시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투르크, 러시아의 세력 각축장이었다. 1828년 러시아가 이 지역을 합병했고 20세기엔 소련이 통치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졌으나 북캅카스의 체첸, 다게스탄, 잉구셰티야 등 7개 자치공화국은 러시아 연방에 남았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강인한 투쟁성으로 '캅카스의 늑대'로 불리는 체첸이다. 체첸은 옛소련이 해체되자 러시아에서 가장 먼저 분리독립을 추구했다. 특히 1994년과 1999년 벌어진 1·2차 체첸 전쟁에선 30만명 이상이 죽고 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러시아 정부는 체첸에 친러 정부를 수립해 지원하고 있지만,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1,000여명의 체첸반군은 러시아군의 완전 철수를 요구하며 테러를 벌이고 있다.
체첸 바로 옆의 다게스탄은 30개 이상의 인종 집단이 사는 다인종 공화국으로 러시아에 합병된 이후 반세기 동안 수 차례 혁명과 내전이 일어났다. 다게스탄은 아제르바이젠, 조지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체첸 등과 접하고 있다. 일부 이웃 국가들은 다게스탄이 러시아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해주기 바라며 다게스탄의 독립을 은근히 밀고 있다.
러시아가 이들 지역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주장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억제하지 못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도미노 분리독립 요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러시아는 약 160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 체첸 등 특정 공화국이 분리되면 다른 이슬람 계통 공화국들의 독립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막대한 지하자원도 러시아가 이 지역의 독립을 필사적으로 막는 이유 중 하나다. 캅카스에는 석탄, 철광석, 몰리브덴 등 자원이 풍부하며 상당량의 석유·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강제로 쫓겨난 이주노동자와 서민들
소치 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중 최대인 51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했다. 하지만 올림픽이 끝난 뒤 경기장과 주변 리조트들은 러시아의 골칫거리로 남게 됐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호텔들을 채우려면 매년 500만명이 소치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알프스의 고급 휴양지와 스키장이 멀지 않은데 굳이 러시아와 유럽의 관광객들이 소치로 향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소치의 호텔과 리조트 등 그 어떤 시설도 장기간 수익을 낼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사실 번듯하게 들어선 소치의 올림픽 경기장에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2007년부터 소치의 경기장 리조트 공사현장엔 아르메니아, 키르기즈스탄, 세르비아, 타지키스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주변국들로부터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몰려 들었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유럽ㆍ중앙아시아 책임자인 제인 부케넌은 소치에 "수 많은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 상태로 억류돼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초 러시아 정부는 불법 이민자를 집중 단속하기 시작했다. 소치의 수백 명의 노동자들도 타깃이 됐고 상당수가 강제로 추방됐다. 소치 올림픽 개막에 맞춰 국제건설목공노동연맹이 "소치의 눈은 노동자들의 피로 얼룩져 있다"는 제목의 성명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연맹 자체 조사로는 경기장 건설 도중 사망한 노동자만 60명에 달한다. 임금체불과 위험한 노동, 12시간 넘는 살인적인 노동환경 등 어두운 그림자들이 이번 올림픽의 유산으로 남게 됐다며 러시아 정부에 노동착취 중단을 촉구했다.
소치 올림픽공원 중앙에는 나무와 울타리로 둘러싸인 공간이 있다. 성화대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이곳은 실은 묘지다. 올림픽 공원을 건설한다고 이곳에 터를 잡고 살던 100여 가구를 강제 이주시키고 난 뒤 남은 마을의 묘지이다. 이주민들이 이곳만은 지켜야 한다며 불도저 앞을 가로막아 남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후지TV는 소치 경기장 주변 난개발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조명한 적이 있었다. 이들이 사는 집들은 대부분 비스듬하게 기울어있다. 4년 전 산사태로 집들이 10m 가까이 밀려났고 그러면서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주민 타티아나는 불법으로 버려진 건축폐기물과 이 폐기물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제거하기 위한 배수 공사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다른 마을에선 올림픽 준비를 위해 신설된 고속도로가 마을 한복판을 통과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러시아 정부는 아직까지 이들을 제대로 보상하지 않고 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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