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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통화스와프

입력
2014.02.2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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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화 마이너스 통장'약속된 환율로 외환 거래변동 폭 줄여 시장 안정 기능최근엔 무역결제 수단으로● 美, 리먼쇼크 후 신흥국에 손길도덕적 의무보다 자국 이익 위해한국·브라질·멕시코 등과 체결양적완화前 수천억달러 뿌려● 中 위상 높아지고 日 추락2009년 위안화 국제화 천명英·유럽은행과 잇달아 체결위안화 사용규모 세계 2위로엔저·우경화… 日, 점차 신뢰 잃어

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했다. 10여년 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던 그 해 10월 30일. "한국과 미국간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가 체결됐다"는 뉴스를 계기로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차츰 안정을 회복하게 됐다. 그 다음날 신제윤 금융위원장(당시 기획재정부 차관보)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낯설기 만한 '한미 통화스와프'의 의미를 "주한미군 주둔 효과와 비슷한 것"이라고 명쾌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존재를 알게 됐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통화스와프'가 무엇인지 알려준 셈이다.

최근 공개된 2008년 당시의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 따르면 미 연방준비위원회(Fed)는 리먼 파산 이후 달러화 부족에 시달리는 외국 은행들을 살리기 위해 조용히 외국 중앙은행들에게 수천억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 수단으로 사용된 게 바로 통화스와프다. 국가간 통화스와프란 한마디로 한 나라의 통화를 상대방 나라 중앙은행에 맡기고 상대방 통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계약이다.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어서 '외화 마이너스통장' '외화 유동성 안전판'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를 통해 달러가 부족한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미국에게 맡기고 달러를 공급 받아 국가부도 위기를 넘긴 것이다. 당시 Fed는 한국을 비롯 스위스, 싱가포르, 브라질, 멕시코 등 14개국에 총 5,800억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미국으로부터 스와프 요청을 거절당한 나라들도 적지 않다. 인도네시아와 터키, 도미니카공화국 등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당시 FOMC 회의록 분석 기사에서 "Fed 내부에서도 통화스와프를 이렇게 대규모로 운용할 수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고 적었다.

미국은 1959년 독일 연방은행과 처음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은 뒤로 유럽이나 캐나다, 일본 등 주로 선진국과 이 협정을 맺어왔다. 통화스와프의 가장 큰 기능은 외환시장의 변동폭을 줄여 국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미리 약속된 환율로 외환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계약 기간 동안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화스와프가 제2의 외환보유액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달러화 공급과 관련한 시장의 불안 심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통화스와프를 확대한다고 해서 단기간 내 미국 경제에 부담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통화스와프 정책을 분석한 책 을 쓴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미 정책 결정자들은 자국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며 "연준의 2008년 통화스와프 확대 결정도 세계 경제를 구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감에라기보다 미국 경제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NYT에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통화스와프를 제공하고 있지만 구제금융 성격이 크다. 대외 신인도 하락을 감수해야 하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경험했던 것처럼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여러 제약을 받는다.

미국은 달러가 독보적인 기축통화란 이점을 바탕으로 국가간 통화스와프를 통해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맞수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은 2009년 위안화 국제화를 천명한 후 다른 나라들과 위안화 통화스와프 협정을 잇따라 체결하며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중국은 지난해 6월 영국과 2,000억위안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고, 10월에는 유럽중앙은행(ECB)와 3,500억위안 규모의 협정을 맺었다. 싱가포르와는 위안ㆍ싱가포르달러 직접 거래를 허용키로 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위안화 위상도 차츰 높아지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무역금융(수출업체 신용장 발급과 수금 등에 이뤄진 금융 거래)에서 중국 위안화 사용 거래가 차지한 비율이 전체의 8.66%를 기록, 유로화를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통화스와프가 개별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반영한다면, 한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일본은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2012년 말부터 엔화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엔저'정책에 기반한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 추락속도는 더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일본정부는 우리나라와 8년간 지속해왔던 원ㆍ엔 통화스와프 계약 연장을 앞세워 한국과의 협상에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려 시도했으나, 한국 정부의 냉담한 반응에 결국 계약이 종료되기도 했다.

통화스와프가 주로 위급한 순간 외화유동성 확보를 위해 맺어지긴 하지만, 최근에는 무역결제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아랍에미리트(UAE)ㆍ말레이시아ㆍ호주 등과 통화스와프를 맺었고, 인도네시아와 협정을 맺기로 합의했다. 이들 국가는 우리나라와 원자재 교역량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원수입이 집중되는 나라를 중심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원화로 수입대금을 지불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달러 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또 신흥국과 잇따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은 것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먼저 통화스와프를 체결을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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