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기념하여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까지 잠재 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이뤄내겠다는 474 공약은 이명박 정부에서 발표한 747공약(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보다는 덜 허황되지만 역시 국민들을 유혹하는 구호일뿐 실현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잠재성장률은 어차피 꿰어 맞추면 떨어질 수 있고 국민소득은 노무현 정부에서 2만 달러를 넘어섰던 것이 이명박 정부 들어 2만 달러 이하로 떨어졌다가 최근에 2만3,000달러 선으로 회복이 됐다.
그러나 전반적인 내용을 한마디로 총평한다면 나쁘지 않다. 행정부가 지속해온 정책을 일괄해서 3개년 계획이라 포장한 탓도 있겠지만 4대강 사업 같은 건설•개발 일변도 정책이 없는 대신 경제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는 달리 바람직하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문제가 끊임없이 지속되는데도 손을 못 대던 3대 공적연금을 개혁하겠다고 선언한 부분이나 임대차 선진화를 내세우고 월세임대나 상가권리금 문제에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부분들이 현실에서 정책을 찾으려는 흐름으로 좋게 보인다. 북한과 계속 접촉하고 지원하면서 통일을 지향한다는 기조도 종전의 보수정권 입장에서는 진일보한 것이다. 대통령 직속 통일위원회의 구성에 대해서는 정치 주변인들로 채워진 민주평통자문위원회가 아닌, 진짜 민간 전문가의 소리를 듣겠다는 현실처방이길 기대한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으로 집권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탄생에 흠결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나 전두환 정권과는 다르지만 노태우 정부와는 유사한 점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광주 민간인학살에 직접 관여했고 대선 개표 과정의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집권 중에는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착복한 인물로 여전히 개인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가 실행한 정책들은 매우 진보적이었다. 직장의료와 농어촌 지역의보가 통합된 국민개보험이 실시되었고 구소련, 중국 등 공산권과 수교가 되었다. 북한과도 화해를 도모해서 유엔에 동시가입하고 북한과 남북협력의 기초가 되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한 것도 노태우 정부 때이다. 국가보안법조차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매우 조심스레 적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국가보안법에 들어간 것도 노태우 정부 때이다. 물론 이 같은 노태우 정부의 진보적 성취는 그의 집권이 6월항쟁으로 가능했고 당시 한국사회의 진보적 욕구가 뜨겁게 끓어올랐던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흠결이 있기에 국민의 뜻을 무섭게 받들어서 역사적으로는 진일보한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예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경제정책이나 대북정책에서 기대보다는 훨씬 바람직한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문제는 실행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고 발표한 지 사흘만에 한국광물자원공사 감사로 정치인을 임명했다. 최근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 청문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김정기 최윤희 후보자는 5.16이 군사쿠데타냐는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미 작년에 장관들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들이 이 부분의 답변을 회피하고도 장관에 임명이 되었다.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는 이들이 공인으로 나설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절대 올바르게 흘러갈 수 없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의 댓글 작업과 작년 서울시공무원 간첩사건의 조작에서 드러난 국정원의 전횡에 대해서 박근혜 정부는 시원스레 파헤치지 못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가 진일보한 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국민들은 태생의 흠결 때문에 제안한 중간평가를 면해주었던 것이 아닌가. 박근혜 정부가 정당한 정부로 올바르게 자리잡고 싶다면 무엇이 노태우 정부를 지속하게 했는지를 배워야 한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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