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6개월이다.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린 건. 배우 이윤지(31) 얘기다. 그는 얼마 전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셋째 딸 왕광박을 맡아 '눈물의 며느리' 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는 그를 27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간 출연한 드라마 중 가장 많이 운 듯하다고 했다. 이윤지는 "나조차 드라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눈물을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극 초반에는 가족의 반대로 최상남(한주완)과의 결혼이 순탄치 않아 울었고, 결혼 후에는 시아버지 최대세(이병준)의 호된 시집살이가 눈물을 쏟게 했다. 그의 큰 눈망울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은 '왕가네 식구들'하면 떠오르는 모습 중 하나다. "나문희, 김해숙, 장용 등 대선배님들과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이 절로 잡히는 힘이 생겨요. 따로 감정을 가다듬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선생님들이 주시는 에너지가 있나 봐요."
눈물이 메마르기도 전에 또 폭풍 눈물 연기를 했던 이윤지이지만, 40%를 넘나드는 시청률은 그를 춤추게 했다. 드라마 제작진과 연기자들의 분위기가 하늘을 날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평가는 호불호가 분명할 정도로 엇갈렸다. '왕가네 식구들'에는 '막가네 식구들'이라고 할 만큼 막장 드라마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수상한 삼형제'(2009), '조강지처클럽'(2007), '장밋빛 인생'(2005) 등을 통해 가족 드라마를 표방했던 문영남 작가의 작품에 불륜과 고부갈등 등 자극적인 설정이 많아 논란이 됐다.
이윤지는 "이야기 전체로 봤을 땐 부부나 육아 문제 등 우리의 삶과 어느 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재미있게 봤다는 분들도 많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막장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출연 배우 입장에서는 완벽한 캐릭터를 구축한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제가 작가였다면 대본 속 한 인물에 애정을 품고 그를 돋보이게 했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문 작가의 대본에는 등장 인물 모두의 캐릭터가 살아있어요. 어느 한 명만 부각되는 일이 거의 없죠. 인물 한 명 한 명을 단단하게 구축해주는 대본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50권의 대본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 대답에서 알 수 있다. 대본을 보고 '무슨 뜻이지?'라는 궁금증을 단 한 번도 품은 적이 없다고 했다.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 속에서도 배우들의 완숙한 연기가 호평을 받은 게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윤주는 지난해 '왕가네 식구들'을 촬영하면서 연극 '클로저'의 무대에도 올랐다. 3개월 가량 겹치는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두 작품을 무사히 마친 그는 "스스로 성장한 느낌"이라며 연극과 드라마에 대한 꿈이 커졌다고 했다.
"더 화려하고 더 큰 배역을 원하는 건 아니고요. 오히려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주·조연의 비중보다는 한 작품 안에서 제가 맡은 캐릭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내려놓음'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요."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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