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열린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언론브리핑은 당초 서승환 국토교통부장관이 주재하기로 예정돼있었다. 그런데 전날 밤 갑자기 발표주제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추가되면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참석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 부총리는 원래 전날인 25일 3개년 계획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주재할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발표형식이 대통령 담화로 바뀌면서 현 부총리의 브리핑은 예정시간을 4시간 앞두고 돌연 취소됐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3개년 계획을 본인의 어젠다(의제)로 소화하고 싶다는 강력한 뜻을 밝혀서 당초 방침과 달리 담화문 형태로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현 부총리는 3개년 계획 발표 다음날에야 다른 부 브리핑 자리를 빌리게 된 것이다. 기재부는 "임대차시장 선진화가 3개년 계획의 1호 정책이라 부총리가 직접 나선 것"이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동석한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의 큰 틀은 유지하겠다"며 기재부가 전날 3개년 계획에 담으려 했던 'LTV DTI 합리화'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에둘러 밝히고 상경했다.
현 부총리는 3개년 계획 마련을 위해 지난 2개월간 각 부처를 진두지휘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무엇을 하느냐'(What)보다 '어떻게 하느냐'(How to)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국(G20) 경제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을 앞둔 18일 "주요국과 3개년 계획을 공유할 것"이라며 실제 현지에서 주요국 경제장관에게 열심히 정책을 소개했지만, 정작 국민들 앞에서 설명할 기회는 놓친 셈이다.
더구나 3개년 계획 요약보고서와 대통령 담화 참고자료 내용이 다르고, 정책도 축소 재조정(본보 26일 1면)되자 비판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기재부의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기능과 현 부총리의 리더십은 쉽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 현 부총리는 3개년 계획 준비를 위해 부처간 협업을 강조했지만 '할당량 채우기' '마감에 맞춰 밀어 넣기'라는 얘기가 준비기간 내내 흘러나왔다. 당초 100대 과제로 선정된 정책 중에 이미 추진중인 업무나 중복된 것이 많아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 부총리는 "실천하는 전략을 내놓으라 주문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고민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협업은 잘됐다"고 해명했다.
이번 정책 혼선과 관련, 일각에선 청와대 경제수석과 부총리간 소통의 문제를 지적한다. 경제수석이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파악해 경제부처에 전달해 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특히 3개년 계획 발표형식이 갑자기 대통령 담화로 바뀐 걸 두고, 누가 결정했는지 또 그 결정과정에서 청와대와 부처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 여러 의문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경제정책은 상대적으로 수혜자와 피해자가 대개 구분되기 마련이라 해당 부처간 의견조율이 쉽지 않다. 그래서 시급한 현안의 경우 종종 발표 직전까지 최종안이 결정되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정부 임기 내 추진할 중장기 계획이 발표 당일까지 여러 버전으로 유통되는 일은 전례를 찾기 쉽지 않다.
이번 혼선의 책임을 몇몇 개인에게 돌리기보다 정책결정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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