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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입력
2014.02.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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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유모차에 실려 다니는 꼬마부터 여든 살 기념으로 온 노인도 있었다. 형제도 있고, 커플도 있고, 할아버지와 손자도 있었다. 심지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일본여자도 있었다. 그야말로 온갖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 나는 꽤 위축되어 있었다. 먼저 웃어주면 바보 같다고 생각할까 봐 잘 웃지도 않았다. 공격적인 마음을 품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나와 내 동생은 이 길에서 가장 잘 웃고 잘 먹고 잘 쉬는, '코리안 시스터즈'로 불리게 되었다.

피레네를 넘으면서 만난 자매는 터키 태생의 독일인으로 커다랗고 까만 눈이 예뻤다. 언니는 씩씩하고 다부져 보였고, 동생은 마른 체격에 예뻤지만 얼굴에 짜증과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서로 너희가 이 길에서 꼴찌라고 놀리며 함께 웃었다. 우리는 서로 '자매들'이라고 불렀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우리는 마주치지 않게 되었고, 동생과 나는 그 '자매들'이 어디까지 갔을까를 추측하며 온갖 이야기들을 만들어보곤 했다. 그렇게 다시 못 만날 줄 알고 아쉬웠던 그들을 목적지에서 다시 만났다. 산티아고 성당 앞 광장, '드디어 왔다'는 성취감과 '이제는 다 와 버렸다'는 왠지 모를 아쉬움에 울먹거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절름거리며 뛰어오는 것이다. 그녀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막 울었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른다. 첫째 날부터 이미 만신창이가 된 발로 한 걸음마다 신음했던, 그래서 늘 얼굴에 고통과 짜증이 섞여 있던 그녀가 이제는 맑고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내내 우리를 걱정했고 만나고 싶었단다. 아! 우리랑 같은 마음이었구나. 30일 만에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기적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까지 자주 연락을 하거나 깊이 알게 된 사이는 아니지만, 그 광장에서 절름거리며 뛰어오던 그 환한 얼굴과 그 때의 놀라움, 반가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에이미'를 세 번째 마주친 날은 비가 엄청나게 왔다. 비에 젖은 생쥐 꼴로도 웃으며 또 보자던 그녀. 그렇게 헤어진 줄 알았는데 레온의 기차역에서 다시 만났다. 반가움에 다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쳐 부르며 기뻐했다. 하루 이틀 함께 먹고, 자고, 걸으며 마음을 나누었다. 아팠던 그녀가 버스를 타는 바람에 더 이상 함께 걷지는 못했지만, 결국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서 우릴 두 번 기쁘게 해 준 친구다.

'수'라는 일본 할머니도 있다. 일 년 내내 돈을 모아서 여행한다고 했다. 자그마한데 씩씩했다. 혼자여도 외로워하지 않았다.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몇 번 얘기를 나누었더니, 나를 볼 때마다 달려와 엄청나게 많은 말을 쏟아내던 귀여운 할머니다. 결국, 걷는 속도가 맞지 않아 헤어지고는 다시 못 만났지만, 마음속으로 늘 끝까지 무사히 걸으시길 기도했다. 밥 한번 같이 먹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프랑스 노부부도 있다. 두 커플이 함께 왔는데 늘 명랑했다. 요리나 설거지를 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 자매를 만나면 늘 장난이 치고 싶은 듯 눈이 마주칠 때마다 우스운 표정을 지었는데, 그걸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이 났다. 어느 날 아침, 모두 함께 아는 노래를 찾아내 큰 소리로 부르며 걷기도 했다. 더 할 수 없이 즐거운 날이었다.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한국 친구들도 있다. 숙소에 먼저 도착하면 침대를 맡아주기도 하고, 밥이랑 닭백숙을 해놓고 기다리기도 했다. 산티아고에 같이 도착해서는 서로 축하해 주고 성당 앞에 앉아 밤새 이야기하며 와인을 마셨다.

길 위에서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미워하는 사람은 볼 때마다 마음이 괴롭고 피곤하다. 결국, 사랑하는 것이 평화로워지는 길이다. 사랑하려면 그 사람을 진심으로 들여다 봐야 한다. 그러면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기약 없이 헤어졌다가 약속 없이 다시 만난 그 모든 반갑고 그리운 인연 덕에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빛났다.

꽃별 해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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