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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2월 27일] 올림픽을 통해 본 음악세계

입력
2014.02.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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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치 올림픽은 정말로 음악 세계의 축소판이었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축제의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들은 음악세계와 겹쳐 보였다.

김연아의 판정시비는 국제 콩쿠르를 보는 듯했다. 월등한 기량을 가진 이들끼리의 경쟁이기 때문에 약간의 '배려'만 있으면 순위가 바뀌기에 십상이다. 결선으로 갈수록 보는 눈이 많아지기 때문에 밀고 있는 연주자에게 방해될 것 같으면 아예 초장에 싹을 잘라버린다.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심사위원의 영향력을 넓힐 좋은 기회다. 주최국의 체면도 봐야 한다. 여기서 반기를 드는 이들을 다음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초대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파벌에 속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때 약간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이런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요즘은 콩쿠르 심사를 예선부터 중계하고 심사위원 명단과 점수를 공개한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대놓고 러시아 선수와 포옹하는 막무가내 심사위원도 있는데. 콩쿠르를 심사하다 보면 예술보다는 숫자놀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인기 종목이 올림픽 한때만 반짝 달아오르는 것도 그렇다. 비인기 종목에 언제부터 그렇게 열광적이었나. 쇼트트랙, 핸드볼, 역도, 레슬링 등 올림픽 효자 종목이라고 하는 종목들에 평소에 관심이라도 있었는지. 음악계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첼로 등 일부 악기군 만이 제대로 대우받고 있지만, 나머지 악기들은 찬밥신세다. 항상 한국 관현악의 문제가 비주류 악기 군의 질적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제대로 육성이나 시켜놓고 비판을 해야지 결과만 보고 평가하면 안 된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무대에서도 인정받는 베이시스트 성민제의 경우 많은 국제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지만, 피아노나 바이올린과 같은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그가 우승한 콩쿠르가 특례 대상 콩쿠르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주류 악기 군이 인정받는 기회의 범주는 포용적으로 넓혀야 한다. 병역 특례가 인정되는 한국의 중요 콩쿠르조차 비주류 악기에 대해 언제 문호를 열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안현수의 화려한 복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편견과 부상으로 퇴물 취급받던 나이 든 선수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국적마저 바꿔가며 절치부심해서 얻은 믿을 수 없는 소설 같은 결과는 많은 이에게 동질감과 대리만족을 줬다. 그에게 이런 기회를 준 러시아의 안목에 대한 칭송도 높기만 하다. 러시아에서 안현수를 영입할 때 그의 몸 상태는 러시아 의료진조차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의 경험과 열망을 높이 샀고 최상의 결과를 얻었다. 이미 생각보다 많은 한국 음악인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경험과 연주력보다는 인맥과 시장논리가 득세하는 한국은 그들을 잡아둘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유럽과 구미에서는 이민 조건의 1순위가 예술인이다.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혜택과 환경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할까.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한 김연아의 엄청난 투자는 개인의 몫이었다. 김연아나 박태환이 어린 나이에 운동을 시작했을 때 가족의 희생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성취가 가능했을까? 그들이 운동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선 피겨나 수영은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렸을 것이다. 연주자들도 가족의 헌신적인 물심양면의 도움 없이는 시작조차 불가능하지만, 막대한 희생이 미래를 담보하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도박에 가까운 극악의 성공 확률이다. 불모지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는 해본 사람들은 안다. 이 불모지에서 꽃을 피운 이들은 그것만으로 인정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기적을 요구하고 성공하지 못하면 실망하고 욕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뼈 빠지게 일해서 한국을 이만큼 만들어 놓은 나이 든 이들을 퇴물 취급하며 조그마한 도움조차 아까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마운 줄 알고 욕하지 말고 아껴달라는 것이 그렇게 큰 욕심일까.

류재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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