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남북 통일에 대비한 '통일준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만들겠다고 밝히면서 기존 대북정책 부처 및 기관과의 역할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박 대통령이 구상하는 통일준비위의 업무는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통일 방향 모색' '국민적 통일 논의 수렴''통일 한반도의 청사진 작성' 등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활용해 청와대 주도로 이른바 '통일 한국'의 밑그림 작업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통일준비위와 통일부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 기존 조직과의 위상 조정 및 역할 분담이다. '통일은 대박'발언처럼 통일준비위 설치도 담론 수준에 머물러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을 경우 기존 조직과의 업무 중복과 불필요한 마찰로 행정력 낭비가 예상된다.
실제로 통일준비위의 주요 업무로 꼽히는 '통일에 대한 국민 여론 수렴'은 이미 민주평통이 담당하고 있다. 헌법기관인 민주평통은 홈페이지에 '통일에 관한 국내외 및 각계 각층의 다양한 여론을 수렴해 정책ㆍ자문 건의에 반영한다'고 기능을 적시했다. 500명 상임위원회 위원과 해외를 포함, 시ㆍ군ㆍ구 단위까지 272개 지엽협의회를 두고 있어 규모도 방대하다. 민주평통 관계자는 "통일준비위가 어떤 일을 할지 들은 바는 없지만, 여론 수렴을 지휘하게 되면 민주평통이 실무창구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에서 남북관계를 전담하며, 주무 부처가 된 통일부가 느끼는 박탈감은 더 크다. 불과 며칠 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제시한 '통일시대에 대비한 중점 추진과제'를 뜯어 고쳐야 할 판이다. 통일부는 젊은 세대에서 통일 무용론이 커지는 점을 감안해 ▦통일교육 내실화 ▦평화통일 기반 구축 태스크포스(TF) 설치 방침을 내놨는데 이는 통일준비위의 방향성과 청사진과 그대로 겹친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설 경우 통일부로서는 스스로의 존립 근거와 정책 목표를 재정립해야 할 상황이다.
그렇잖아도 통일부는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청와대와 북한 국방위원회가 핫라인을 만들어 합의하면서 고유 역할인 남북대화에서도 배제된 상태다. 국가안보실 안보전략비서관에 내정됐던 천해성 전 통일정책실장의 중도 낙마로 고위급 정책 결정 과정에서 아예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김의도 대변인은 26일 "(통일부와 통일준비위는) 같이 한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며 "기능이 중복ㆍ상충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한 전직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통일준비위 발족은 통일부더러 청와대 하청 업무나 하라는 소리와 다름없다"며 "이명박 정부 초기 해체론이 불거졌을 때처럼 존재감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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