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조선시장의 중심은 유럽이다. 선박건조능력으로 보면 현대중 삼성중 대우조선 등 ‘빅3’ 조선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도 세계 정상급이지만, 엔진 등 핵심 부품은 여전히 유럽이 앞서 있다. 특히 고부가가치 구조물인 플랜트는 국산화율이 20%대에 불과하다.
그런데 핵심 조선 기자재 설비의 하나인 ‘선박평형수(이하 평형수) 처리장치’ 만큼은 우리나라가 세계 1위다. 게다가 대기업도 아니고 중소기업이다.
이 분야 세계 1위에 오른 평형수 처리 전문 환경기업 ‘테크로스’는 지난 2000년 카이스트 벤처단지에서 탄생한 기업. 말 그대로 벤처기업이다. ‘인터넷이나 소프트웨어 같은 서비스업이면 몰라도 제조업에선 벤처가 성공하기 힘들다’는 속설을 깬, 성공벤처의 모범기업인 셈이다. 주변에선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가 지향해야 할 교과서적 기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배가 항해 중 균형을 맞추려면 적당히 가라앉은 상태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배 안에 바닷물을 채워야 하는데 이 물이 바로 평형수다. 출항 할 때 빈 배에 물을 넣은 뒤, 정박지로 안전하게 이동한 다음 화물을 싣기 전에 배출된다.
문제는 배출 과정에서 유해생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 토착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 미국은 1990년까지 80여종의 수중생물이 연안에 들어와 약 100조원의 피해가 발생했고, 우리나라도 평형수에 담겨 들어온 지중해 담치, 외래 갯지렁이, 해파리 등 때문에 발전소 가동이 중단되거나 양식장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때문에 약 15년 전부터 글로벌 조선업체들은 평형수 처리시설 개발에 눈을 돌리고 있었는데, 테크로스는 설립 당시 자체 개발한 전기분해기술을 이용해 소독장치 관련특허를 따냈다. 2004년 국제해사기구(IMO)가 ‘선박평형수 및 침전물 관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채택하자, 테크로스는 이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개척했고 2009년에는 세계 최초로 IMO로부터 평형수 처리장치에 대한 최종 승인을 얻었다. 주문은 쇄도했고 34억원이던 매출은 3년 뒤 751억원으로 급증했다. 테크로스가 길을 열자 다른 국내 후발업체들도 속속 뛰어들었고, 결국 최근 3년 간 전세계 1,600건의 평형수 처리설비 수주량 가운데 한국이 절반 이상인 871척을 차지하게 됐다.
현재 1조~2조원 규모인 이 시장은 앞으로 무한성장이 예상된다. 2012년 이후 건조된 모든 선박, 이전에 건조됐더라도 평형수 용량이 5,000㎥를 넘는 선박은 2016년부터 의무적으로 이 설비를 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전세계 운항 중인 국제선이 6만8,000여척이고 대당 평균 설치비용이 10억~12억원 임을 감안하면 총 80조원 규모의 시장이 열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기술이다. 전세계 선박의 절반 이상이 출입하는 미국이 현행 기준보다 최대 1,000배 높은 평형수 처리잣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미국의 강화된 기준이 사실상 글로벌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도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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