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들이 줄줄이 좌초되고 있는 마당에 구리시는 철 지난 신도시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10조원 규모의 '구리월드디자인시티(GWDC)' 이야기다. 구리시는 성공을 장담하지만, 2011년에 낸 '신성장 녹색도시 조성 및 월드디자인센터 타당성 분석용역' 보고서의 내용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GWDC는 새로운 개념의 첨단 디자인유통산업의 거점 조성을 목표로 미국 디자인 전문 업체 주도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상권분석에서 나온 기준들이 GWDC 시설규모 추정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어 근본적으로 문제다.
먼저 GWDC 구리시 입지 타당성 추정 방법이 황당하다. 비행 2시간대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부유층 인구 분포 등을 중심으로 한 입지분석에서 한국, 상하이, 홍콩, 광저우, 도쿄, 싱가포르 5개 후보지 중 한국이 가장 높고 도쿄가 가장 낮았다. 한국은 국가고 다른 곳은 모두 도시이다. 한국이 아니라 구리와 직접 비교했을 때에도 입지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도쿄나 홍콩의 부유층(혹은 업체)들이 비행기를 타고 디자인 가구를 주문하기 위해 구리까지 찾아올까?
한국 내에서는 구리, 김포ㆍ고양, 송도 세 도시를 비교했는데 구리 1위, 송도 2위, 김포ㆍ고양 3위로 결과가 나왔다. 구리시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한마디로 서울접근성과 가구산업 집적도 때문이다. 디자인산업은 그 나라, 그 도시의 소득수준, 생활양식 등 문화 역량과 긴밀하게 관련되고, 이것이 곧 실제 상권과 생산지를 형성한다. 보고서에서는 구리시 주변의 디자인 생산-유통 네트워크에 관해 전혀 분석되어 있지 않다. 디자인과 생산이 따로 놀게 되면 GWDC는 결국 껍데기만 남고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또한, 보고서에서 예측한 핵심시설의 수요 연면적(2015년 기준)은 총 69만 1,190㎡ (약 21만평)다. 그런데 구리시가 실제 발표한 GWDC 면적(토지이용계획상 면적)은 172만 1,723㎡ (52만평)으로 약 2.5배가 뻥 튀겨졌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식으로 월드디자인센터 조성을 빌미 삼아 도시개발 규모를 늘리다 급기야 '신도시' 건설로까지 판을 키운 것이다. 이를 위해 보존용 토지인 그린벨트를 대대적으로 허무는 대안이 선택되었다. 이 때문에 서울-구리의 도시 연담화가 촉진되고 인근 한강 상수원 보호구역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또 개발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택 공급이 주가 되다 보니 주택 과잉공급 대란을 부채질할 수 있다. 현재 경기도 전체 407개 지구에 143만호의 공급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한편, GWDC 추진을 위한 국제투자자문단(NIAB)은 특혜와 특권을 구리시에 요구하고 있다. 만일 이런 내용이 성사되면 내국인과의 역차별 문제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지위와 특권을 이용한 불법적 거래가 빈발할 수 있다. 또한, 경기악화 등으로 거주 외국인이나 기업들이 일시에 철수하게 되면 도시 전체가 버려진다. 이렇듯 현재로선 외국 투자자 중심의 개발에 관한 적절한 제도 틀 자체가 없다. 구리시는 투자자를 먼저 확보하고 그들의 수요에 맞는 '맞춤형 개발'을 차별성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것으로 GWDC의 사업전망이 100% 보장된다고 볼 수 없다.
신개념의 디자인산업을 유치해 구리시의 발전은 물론, 국가적 차원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GWDC, 이를 위한 지자체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실제의 개발 절차와 방식에는 신개발주의 망령이 예외 없이 깃들여 있다. 설혹 개발 사업이 성공한다 해도, 구리시와 같이 작은 지방도시에 대규모 '외국인 조차지'가 조성되면 그 도시는 두 개로 절단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문에 대한 검토나 대책은 전혀 없다. 더 근본적인 물음인 구리시가 과연 세계적인 디자인 허브가 될 수 있느냐에 대한 타당성 검토는 다소 편파적이고 과장된 방식으로 이루어져 신뢰하기 어렵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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