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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소년 연기, 억지흉내보다 내 모습대로 다가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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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소년 연기, 억지흉내보다 내 모습대로 다가갔죠"

입력
2014.02.2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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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국내 초연된 피터 쉐퍼의 연극 '에쿠우스'는 태생적 욕망과 종교적 상징의 충돌을 소년의 광증에 빗대 그린 문제작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치료하는 데 지친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말 8마리의 눈 16개를 찌른 열일곱 살 알런의 잔혹한 심리를 파헤치며 욕망의 근원을 후벼 판다. 극단 실험극단이 '에쿠우스'를 내달 14일부터 5월 17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 올린다.

라틴어로 '말(馬)'을 의미하는 '에쿠우스'에서 말을 숭앙하는 알런 역은 남자 배우에게 등용문과 같은 배역이다. 고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김영민 등이 연기한 알런은 광기와 정상을 교묘히 오가는 난해한 캐릭터다. 이번 '에쿠우스'에서는 지현준과 전박찬(더블캐스트)이 알런으로 나온다. 지난해 전회 매진한 '단테의 신곡'을 비롯해 '나는 나의 아내다' '스테디 레인'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데뷔 10년 만에 연극상 신인 부문을 휩쓴 지현준(36). 연극 무대는 물론 무용극과 뮤지컬에서 선 굵은 연기력을 보이며 무대의 블루칩으로 올라선 그를 서울 명륜동 연습실에서 만났다.

원작이 묘사하는 알런은 '볼이 움푹 팬 멍든 사춘기 소년'에 불과하지만, 관객이 무대에서 목격한 알런은 연약하면서 욕망에 달뜬 어린 아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다. 반면 지현준은 목소리를 비롯해 근육질의 몸 구석구석 '굵은' 어른 배우다. 그의 말처럼 "알런으론 어울리지 않게" 생겼다. "차라리 옆에서 달리는 말(극에는 말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출연한다)을 닮았다"는 게 그 자신은 물론 주변의 평이다.

"열일곱 소년이 나오는 영화들을 다 보았어요. 그런데 이 나이의 소년이 생각보다 어리지 않더군요. 내 모든 걸 꺼내놓고 싶은, 생물학적으론 오히려 완성된 남자죠. 그렇다고 관객의 눈에 소년 같은 남자가 말의 눈을 찌르는 것과 저처럼 건장한 배우가 찌르는 것이 똑같이 비칠 수는 없겠죠. 처음엔 억지로 열일곱 소년의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이제는 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제 모습과 닮은 알런을 연기해도 원작의 알런으로 다가갈 것이란 연출(이한승)님의 믿음을 따르려고요."

'에쿠우스'를 문제작이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배우들의 나신 연기다. 악마인지 유일신의 현신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의 포효와 성적인 심상 덕분에 그 앞에 발가벗은 육체들의 무대는 눅진한 땀 냄새로 젖어버릴 듯하다. "어느 종교나 말이 상징하는 이미지가 있어요. 기독교에 심취한 알런의 가정 환경으로 볼 때 알런이 눈을 찌른 말들은 악마와 신 모두를 상징해요. 마지막까지 이들 말과 일체화하려는 알런, 여자친구 질(이은주, 김지은)을 향한 욕정이 말의 눈에 비치며 뒤죽박죽 되죠. 벗고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아요. 하지만 무대가 인간의 몸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힘을 가질 때가 있어요. 그게 있으면 벗은 몸이 객석의 집중을 망치리란 걱정은 없죠."

알런은 광인이면서 광인이 아니다. 광증으로 말을 공격하지만, 이성의 영역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광기를 표현하려 하면 안 돼요. 잘못하면 '연기하는구나'라는 걸 객석에 보이고 말죠. 오히려 역동적인 장면은 편하게 가요. 가장 어려운 연기는 다이사트(안석환, 김태훈)와 대화 장면이죠. 소소한 감정 잡기가 만만치 않아요."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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