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대선 부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승리를 선언했던 여권의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축출되고, 무혈항쟁을 이끈 율리야 티모셴코가 총리에 올랐다. '오렌지 혁명'이다. 2006년 원내 제1당 자격으로 총리에 오른 야누코비치는 이듬해 선거에서 다시 티모셴코에 패했으나 2010년 대선 맞대결에서는 승리해 대통령으로 권좌에 복귀했다. 10년 동안 권력을 뺏고 뺏기며 치열하게 맞붙었던 둘은 소련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를 양분한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 남한의 6배 크기인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드네프르강을 사이에 두고 '친 유럽'의 서쪽과 '친 러시아'의 동ㆍ남부로 분열돼 왔다. 인종과 언어도 서쪽은 우크라이나계와 우크라이나어가 대다수이고, 동ㆍ남부는 러시아계와 러시아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최남단 크림반도는 러시아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서방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쟁탈전에 가세하면서 우크라이나 분열은 동서진영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졌다.
■ 지난해 11월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중단하고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선언하자 다시 반정부 시위가 터졌다. 100여명이 희생되는 최악의 유혈사태를 겪으며 석 달 가까이 계속된 시위는 22일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고 5월 조기대선을 실시키로 하면서 끝났다. 야누코비치는 또다시 시민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고, 직권남용 혐의로 옥살이를 하던 티모셴코는 즉각 석방됐다. 5월 대선 출마도 거론된다.
■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폴란드에까지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이 접근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까지 서방에 넘어가는 것은 러시아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유럽으로 나가는 러시아 가스관의 90%도 우크라이나를 통한다. 러시아가 대규모 경제원조로 우크라이나를 달래는 이유다. 그제 러시아 의원 대표단이 친러 세력이 강한 크림반도를 방문해 "크림반도 합병요청이 오면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해 세계를 긴장시켰다. 붕괴된 구 유고연방의 역사가 우크라이나에서 반복될 것인가.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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