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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2월 27일] 대통령과 공직 사회의 함수관계

입력
2014.02.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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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임기 4년 동안 추진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취임 1주년을 맞은 그제 발표했다. 올 초 자신이 제시한 '통일 대박론'의 논의를 위해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도 발족시키겠다고 밝혔다. 경제혁신과 통일을 투 톱 삼아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고 통일 청사진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획 발표 과정에서 벌어진 혼선은 줄곧 불통 지적을 받아온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자칫 일방주의로 흘러 경제혁신에 대한 기대를 훼손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한다.

무엇보다 기획재정부 등 주요 정부 부처들을 결과적으로 꿀 먹은 벙어리, 양치기 소년으로 만든 것은 다시 생각해도 의아한 일이다. 기재부는 박 대통령 담화문 발표 때까지도 어떤 내용이 담화에 담길 지 확신하지 못했다. 결국 정부 안팎의 우려대로 이미 엿새 전에 언론에 설명한 경제혁신 100개 과제의 상당 부분이 누락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기재부가 대통령에게 제출한 계획이 사실상 퇴짜를 맞은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 실행 방안을 만들고 집행하는 곳이 기재부 같은 정부 부처라는 점을 감안하면 왜 사전에 주무 부처와의 충분한 논의와 조정을 거쳐 이견 없이 완성된 경제혁신 계획을 도출해내지 못했는지 의문이다. 또 관련 부처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발표 직전까지 담화문에 정책이 더해지고 지워지고 수정된 상황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대통령이 정부 부처가 올린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택하지 않을 수 있다. 국가 비전과 목표를 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대통령의 책무이자 권한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방적으로 진행될 때 뒤따를 부작용도 고려하는 신중함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아쉽다.

대통령이 각 부처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과정 없이, 또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려는 노력 없이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일방적으로 부처에 이입시키려 하면 공직사회는 잔뜩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책상에 앉아 일은 해도 창조적이거나 생산적인 업무는 하지 않게 된다. 하는 일만 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싫어하는,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정책을 거듭 건의하고 관철시킬 만큼 간 큰 공직자는 없다. 그러니 자연스레 국가, 국민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게 된다. 채택되지도 않을 정책을 뭐 하러 만드느냐, 대통령과 청와대 지시대로만 하면 된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해진다.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대변되는 공직사회의 보신주의, 무사안일주의는 이번처럼 대통령의 말 한마디, 결정 하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대 정권을 돌아보면 집권 초기 때마다 공직사회 기강을 다잡기 위해 사정ㆍ감사ㆍ감찰 활동들을 벌였지만 그때마다 공직사회는 복지부동으로 응수했고, 이후 공직사회 다잡기는 번번이 유야무야 되기 일쑤였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었다.

경제혁신 과제의 대거 누락은 박 대통령이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팀을 신임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거꾸로 말해 정부 부처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이는 장관의 부처 장악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통일준비위원회의 탄생으로 통일 정책 수립의 본산으로서 체면을 구기게 된 통일부도 마찬가지다. 부처 수장의 힘이 빠지면 부상하는 것은 개각설이다. 하지만 인물난에 국회청문회 걱정까지 겹치면 제때 타이밍을 잡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애써 마련한 경제혁신 과제의 정상적 추진이 어렵게 된다. 그 여파는 박 대통령 자신과 국정 운영에 미칠 수 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와 정부가 공감하고 합의한 경제혁신 청사진을 펼쳐 보였어야 했다.

각료가 대통령의 국정 비전과 철학을 구현하지 못하면 교체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국정 운영 과정에서 드러나는 대통령 리더십의 문제는 대통령 스스로 개선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공직 사회와 국정 비전과 운영에 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황상진 편집국 부국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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