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가정보원의 비밀주의 문을 뚫을 수 있을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이 "조작은 없었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제출하면서, 검찰이 사건의 실체를 어디까지 파헤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진상조사팀은 26일 "국정원이 답변서에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입장을 제시했으며 (조작 의혹과 관련해) 역할이나 가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전날 내부 조사 결과를 A4용지 20여장으로 정리해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국정원 답변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유우성씨의 북한-중국 출입경 기록 등 문서 입수 과정에 조작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특히 "국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며 출입경 기록 입수에 관여한 현지 요원 등 관련자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 또 국정원 직원인 주 선양(瀋陽) 총영사관의 이인철 영사가 직접 기록을 입수한 것이 아니라 '제3자'를 통해 받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신원이 알려진 이 영사으 책임을 벗겨주면서 '제3자'의 신원은 비밀에 부쳐 방패막이를 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국정원이 이미 신분이 밝혀진 이 영사는 단순 전달자로 하고, 숨겨진 다른 사람을 등장시킨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결국 검찰의 진상조사는 '제3자'의 신원과 역할을 밝히는 데 성패가 달렸다. 국정원이 당초 확보한 출입경 기록이 '출-입-입-입'이었다가 나중에 '출-입-출-입'으로 바뀐 까닭, 유씨의 여권 기록과도 다른 이유 등을 밝히려면 제3자의 조사가 필수적이다.
결과를 속단할 순 없지만 벌써부터 조사 결과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검찰은 과거 국정원 관련 수사에서 번번이 쓴 맛을 봤고, 이번 조사에서도 국정원의 원만한 협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공안 사건들에서 손발을 맞춰온 국정원과 검찰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의혹의 실체를 밝히려는 검찰의 의지에도 여전히 물음표가 찍혀 있다.
검찰이 굳게 닫힌 국정원의 입을 열게 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정식 수사로 전환한다 해도 국정원장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도 할 수 없는 등 법적 제약이 많은데다, 신원 파악조차 안 된 상태에서는 조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건 자체가 미제로 남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문서감정 등으로 위조 여부는 최종 확인된다고 해도 가담자를 가려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진상조사 절차와는 별개로 이번 사건에 대해 증거 철회나 공소장 변경 없이 28일 예정된 항소심 재판에 임할 방침이다. 현재로선 증거 위조를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번 의혹과 관련해 문건 입수에 관여한 이인철 영사와 수사ㆍ재판에 참여한 검사 2명을 이날 검찰에 고발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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