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동은 특별한 곳이다. 사대문 안의 지명에 창(倉)이 들었으니 선혜당상 관할의 곳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을까. 그런 흔적은 지금 1g도 없다.
특별하다는 건 사뭇 다른 낮과 밤 때문이다. 굴지의 대기업과 금융기관으로 둘러싸인 자리,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이곳에선 공장식 섭식이 점심시간마다 벌어진다.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세팅’이 돼 있는 자리에다 몸을 세팅해 넣으면 반나절 분의 칼로리가 몸 속에 저절로 세팅된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20분. 화이트칼라가 축생계를 경험하는 시간.
해가 지면 이곳은 질펀하게 변한다. 이른바 ‘북창동식 서비스’가 밤마다 반복된다. 역시나 세팅돼 있는 공간에 몸을 세팅하면 하루 분의 권태와 욕망을 몸 속에서 뽑아내 주는, 효율이 매우 높은 공장식 배설 시스템. 대략 두 시간이다. 넥타이를 맨 수컷들이 아수라계를 경험하는 시간.
그러나 정말 북창동이 특별한 것은 또 하나의 시간이 여기 존재하기 때문이다. 배설이 끝나고 다시 허기와 노동의 피로, 반사적인 욕망이 쌓이기 전의 그 시간을 가리키는 이름은 새벽이다. 매일 새벽, 이곳 북창동은 인력시장이 된다.
저 연탄은 대기하는 일용직 잡부들이 둘러싸고 있던 것이다. 밤새 뚝뚝 떨어지는 돼지기름을 정수리로 받아 내다 끌려 나왔을 저 탄소화합물은 제 몸에 남은 마지막 온기를, 하루 밥벌이를 구하러 나온 일용직들의 추운 가슴에 고루 나눠주고 있었다. 그 풍경이 사무쳐 들었다는 사실을, 내 몸에 아직 인간계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고 쉽게 해석해도 되는 것일까.
이상은 ‘여행’이라는 문패를 단, 이 산더미 같은 두 페이지짜리 기사를 마감 당일 해치우려 오전 6시 15분에 북창동 언저리로 출근하면서 마주친, 연탄에 관한 잡상(雜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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