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석 부의장 (새누리)의제 중심 상임위 체제로 바꿔 식물국회 막아야개인적으론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도입 바람직● 박병석 부의장 (민주)여야가 자기 편만 바라봐선 국민의 신뢰 못 얻어대통령 권력 분산은 시대 흐름… 빠를수록 좋아
"우리의 경제는 일류인데 정치는 3류, 4류"라면서 정치권을 때리는 소리가 높다. 대치 정국의 장기화로 민생이 표류하자 국회는 동네북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야의 국회부의장인 새누리당 이병석(62ㆍ포항 북) 부의장과 민주당 박병석(62ㆍ대전 서갑) 부의장이 정치개혁 전반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두 부의장은 닮은꼴이어서 축하 전화가 다른 쪽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등 에피소드가 많다. 이름만 아니라 나이도 같고, 16대 총선 때 동시에 국회에 입문한 4선 의원이다.
'정치개혁과 개헌'을 주제로 열린 대담은 24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두 사람은 생산적 국회로 개혁하고, 개헌을 가급적 빨리 추진해야 한다는 총론에서는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각론에선 입장 차이를 보였다. 이 부의장은 "의제 중심의 국회를 만들어서 모든 상임위가 동시에 마비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동물 국회가 식물 국회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 선진화법을 다듬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부의장은 "여야 모두 자기 편만 쳐다보는 정치문화를 바꿔야 국회가 개혁된다"면서 "몸싸움을 없앤 선진화법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 문제와 관련, 박 부의장은 "대선에서 1.6~3.5% 포인트 차로 당선된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행사하면 갈등이 증폭된다"면서 "박근혜 정부 임기 전반에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의장은 "부통령제를 도입해 극단적 경쟁구조를 완화해야 한다"면서 "개헌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국회가 민생을 팽개치고 싸움만 한다는 비판 여론이 비등하다. 가령 지난해 정기국회 종료 하루 전날인 12월 9일까지 법안이 한 건도 처리되지 못했는데, 12월 10일에야 법안 34건이 졸속으로 통과됐다. 국회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이병석 국회부의장= 우선 의제 중심의 국회를 만드는 것이다. 생산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은 상임위원회를 대(大)상임위원회 체제로 개혁하고, 대상임위 산하에 의제별로 구성한 수많은 소위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의제 중심으로 진행되면 여야 한쪽이 모든 의제에 조건을 걸 수 없다. 큰 다툼이 없는 의제를 선별해서 조속히 처리하면 정략에 따라 모든 상임위가 마비되는 현상도 막을 수 있다.
박병석 국회부의장= 지난해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서민 생활이 굉장히 어려웠는데, 국회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더 많은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점에 대해 자성해야 한다. 국회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원인은 신뢰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이 정치를 신뢰하지 않고 여야가 서로 불신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여야가 자기 편만 쳐다보는 정치 문화를 바꿔야 국회도 개혁될 수 있다.
-다수결과 소수의견 존중이란 국회 운영의 양대 원칙이 지켜지려면 여야의 행태도 크게 달라져야 하는데.
박 부의장= 국회에서 소수를 존중하는 다수결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김대중ㆍ노무현ㆍ박근혜 대통령은 각각 1.6%, 2.3%, 3.5% 포인트 차로 2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하지만 대선 승자가 모든 권력을 행사한다. 대통령이 자신을 찍지 않은 48~49%의 유권자를 존중하는 정치를 한다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나 정당은 인기가 떨어지면 자기 지지층만 보는 정치를 하게 된다. 여든 야든 합리적 중도층까지 고려하는 정치를 해야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이 부의장= 새로운 여야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 덧셈의 정치, 분열의 정치가 아니라 융합의 정치가 돼야 한다. 합의 가능한 의제는 우선 처리하고 논란이 있는 의제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갖고 토론하는 의회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러나 야당이 합의 가능한 의제조차도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해 국회가 전면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국회 선진화법 체제에서는 야당의 협조 없이는 생산적 국회가 거의 불가능하다. 여야는 선진화법 도입 취지를 살려서 새로운 의회주의 문화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여당은 청와대에 너무 끌려가면서 거수기 역할을 하고, 야당은 특정 쟁점 때문에 국회 논의를 접고 장외로 나간다는 비판을 받는데, 자성해야 하지 않나.
이 부의장= 야당은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탓한다. 여당이 당정협의 등을 통해 청와대와 협의했다고 해서 청와대의 거수기라고 할 수는 없다. 선진화법 도입 이후에는 60% 이상의 초(超) 절대과반?의석의 지지를 얻어야 쟁점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으므로 야당과 합의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야당은 여당과 청와대의 협조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질 게 아니라 국민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법이냐를 따져서 결정해야 한다.
박 부의장= 사회자가 자성하라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 부의장은 주로 야당을 비판했다. (웃음) 금년 초에 새누리당의 한 최고위원이 '제대로 여당 역할을 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눈치를 보거나 정부에 끌려 다닌 적은 없는지 자성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야당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 부의장의 지적처럼 쟁점이 덜 되는 법안에 대해서는 충분히 논의해서 처리하는 게 옳다.
-2012년 5월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 선진화법의 개정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쟁점 법안의 경우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한 것을 놓고 여러 의견이 있는데.
박 부의장= 선진화법 도입 이후 국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몸싸움이 사라졌다. 누가 다수당이 될지 모르던 때, 당시 분위기로는 민주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때 새누리당이 먼저 제안한 뒤 논의가 이뤄져 통과됐다. (국회 운영의) 속도가 다소 늦어져 여당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선진화법 정신에 맞춰서 움직이는 게 바람직하다.
이 부의장= 각종 신형 자해 장비를 동원해 물리적으로 난장판을 만들어내는 '동물 국회'를 단절해야 한다는 의지에 따라 여야가 논의해 선진화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뒤에 야당이 장외로 나가는 바람에 국회가 '식물 국회' '불임 국회'로 바뀌었다. 따라서 선진화법을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60%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므로 '식물 국회'를 막기 위한 선진화법 개정도 쉽지 않다. 여야가 서로 신뢰하면서 국민을 위한 국회가 어떤 것인지 공감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합리적 의회상을 뒷받침하는 제도가 마련될 것이다.
-선거 제도는 어떻게 개혁하는 게 바람직한가.
이 부의장= 선거제도는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이므로 국민의사가 합리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제 지역구(포항)의 경우는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면서 농촌 지역의 대표성이 줄어드는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때문에 기초 의회의 경우 도시 지역은 중선거구제(3인 이상 선출)로, 농어촌 지역은 소선거구제(1인 선출)로 하는 복합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인구, 지역, 직능에 따라 합리적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구 제도에 대해 체계적 연구를 할 때가 됐다.
박 부의장= 현행 소선거구제는 민의를 합리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가2012년 부산 지역의 총선 결과이다. 부산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당 득표율은 각각 51%, 31%인데 지역구 의석 비율은 89%(16석)대 11%(2석)로 벌어졌다. 민의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꼭 필요하다. 광역시에서는 5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뽑는 대선거구제, 다른 지역에서는 3~4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검토할 수 있다. 그리고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 함께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제왕적 총재가 당을 이끌었던 3김시대가 끝났는데도 당내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당 민주화와 정책 정당화를 위한 개혁 방안은.
박 부의장= 당 운영에서 국민 우선, 국가 우선이 돼야지, 당 우선과 지지자 우선이 되면 국민 신뢰를 받기 어렵다. 당내에서 건강한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하고, 특정 계파 이익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의원총회를 활성화하고 중앙당 권한과 조직을 축소해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정책 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야의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한 데에는 정쟁 위주로 보도한 언론의 책임도 있다.
이 부의장= 당 운영 구조를 권위주의적 수직 구조에서 다원적인 수평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또 이번 기회에 광역 시ㆍ도당 중심의 정당으로 변화해야 한다. 중앙당 지시에 따라 시ㆍ도당 사무처장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시ㆍ도당에 사무처장 외에 정책실장을 둬야 한다. 지역 단위 민생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정책 전문가를 시ㆍ도당에 보내 정책실장으로 임명해 사무처-정책실 투톱 시스템으로 운영하면 정책 정당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국회의장 산하의 헌법개정자문위가 활동하고 있고, 최근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에 가입한 여야 의원이 151명으로 재적의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어떤 방향으로 개헌을 추진해야 하는가.
이 부의장= 이 문제에선 사견을 밝히겠다. 정략적 판단을 배제하고 100년을 내다보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장기집권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제 국민 의식은 장기집권을 우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했다. 권력구조 문제와 함께 통일, 영토, 지방자치와 분권, 국민 기본권 문제 등 새롭게 제기되는 가치를 적극 반영할 환경이 됐다. 권력구조 문제에서는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 도입이 바람직하다.
박 부의장= 1987년에 제정된 헌법은 현재나 미래를 끌고 갈 수 있는 헌법이 아니다. 여야 의원들의 공통된 생각은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제도 고려할 수 있는데, 아직 내각제를 선호하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행정부가 예산 편성권과 법안 제출권을 갖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없다.
-그동안 개헌 논의는 많았지만 구체적 액션은 없었는데.
박 부의장= 정권 초에 개헌해야 한다. 노무현정부에서 임기 말에 개헌을 추진하려다 안된 사례가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임기 전반부에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이 부의장= 개헌 추진 시기는 19대 국회에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개헌안이 발의된 뒤 국민들이 충분히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담 진행= 김광덕 선임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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