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 다 드려도 부족한데…."
누이는 백발이 성성한 오빠 앞에서 주섬주섬 짐 보따리를 풀었다. 그 안에는 정성스레 한아름 챙겨 온 옷가지와 생필품이 가득 차 있었다. 누이는 들뜬 마음에 "오빠 살아계실 때 이것도 입어보시고, 저것도 입어보시고"라며 살갑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오빠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너희가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이게 뭐냐"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이는 갑작스런 상황에 말문이 막혔다. 함께 온 북쪽의 아들이 보다 못해 "아버지 그만하시라요"라며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누이는 멍하니 오빠를 바라봤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살며시 오빠의 거친 두 손을 매만졌다. 참으려 했지만 뺨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혈육을 만난 기쁨보다 분단 현실의 서러움에 북받쳐 바닥에 주저 앉았다.
누이 김경숙(81)씨는 6ㆍ25전쟁 때 오빠 전영의(84)씨와 소식이 끊겼다. 끝내 오빠를 찾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김씨는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성도 바꿨다. 오빠가 자신을 찾는다고 연락이 왔을 때는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그러나 60여년 만에 만난 오빠는 예전의 모습과 사뭇 달라 오랜 세월의 무게와 체제의 차이가 야속할 뿐이었다. 김 씨는 "오빠를 한 번만 만나보려고 평생을 기다렸다. 우리가 헤어진 시간, 이 현실이 서럽고 비참해서 눈물이 난다"며 끝내 오열했다.
이산가족 2차 상봉 이틀째인 24일 남북의 가족들은 오전과 오후 세 차례 2시간씩 모두 6시간의 만남을 가졌다. 오전에는 북측 상봉단이 머물고 있는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을 갖고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이어 호텔에서 점심을 함께 먹은 뒤 오후에는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을 가졌다. 셋째 날인 25일 오전 1시간의 짧은 작별 상봉을 제외하면 사실상 마지막 일정이다.
자연히 가족들의 회한과 아쉬움은 커져만 갔다. 북측 최고령자 김휘영(88) 씨를 만난 여동생 종규(80)ㆍ화규(74)ㆍ복규(65) 씨는 오빠를 생각하며 3년 전부터 기록한 수필집을 건넸다. 이에 오빠 김 씨는 "달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며 "남쪽에 떨어져 있는 부모, 형제도 같은 달을 볼 것 아니냐"라고 동생들을 다독였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연숙 씨도 시립간호고등학교 재학 중 북한군에 끌려간 언니 리임순(82)씨를 만났다. 그는 "세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언니와의 얘기가 재미있었다"며 "남들은 많이 울었지만 우리는 기뻐서 잘 울지도 않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상봉장에서 만난 북측 관계자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남측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한 간부급 안내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제 머리를 굴리는 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 말은 자기 생각이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남북관계도) 잘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반면 조선적십자회 소속이라는 한 관계자는 고위급 접촉 합의사항을 거론하며 "남측에서 비방 중상 금지 합의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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