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며칠 전 끝난 동계 올림픽 개최지가 떠오르신다고요? 그런데 저는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내내 소치 허련(1809~1892)이라는 화가이자 관리, 그리고 추사 김정희가 "그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고 했다는 인물이 끊임없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소치(小癡ㆍ작을 소, 어리석을 치)라는 겸손한 호(號)를 가진 이 분에 대해 저는 어디서 알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백과사전을 통해서였습니다. 인터넷만 켜면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제 방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백과사전인 을 비롯해 , , 그리고 '한글판' 등을 통해서 소치와 소치의 후손들이 오늘날까지 우리 화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확인했던 것입니다.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원시적 동물이기에 아직도 종이에 새겨진 백과사전 읽기를 즐깁니다. 물론 종이 백과사전은 가상공간의 백과사전에 비해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우선 정보가 오래된 경우가 많습니다.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소치'를 검색하는 데는 단 1초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백과사전에서 '소치'를 찾기 위해서는 발과 손을 움직여야 합니다. 구입하기 위해서 돈을 치러야 할 뿐 아니라, 비싸기 그지없는 대한민국 아파트의 한 부분을 사람으로부터 빼앗아가기도 하는군요. 그런 까닭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종이 백과사전은 헌책방 외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첨단의 시대에 가장 첨단의 나라에 살기에 종이 백과사전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혹시 이런 분을 아시나요? 아서 고드프리(1903~1983). 14세 때 가출해서 미 해군에 입대한 후 연예인이 되었답니다. 그 후 방송을 진행했는데, 프로그램을 편안히 진행했고, 광고에 대해서는 종종 농담조의 반박을 덧붙이곤 했답니다. 후에 폐암에 걸렸다가 회복이 되었고, 죽을 때까지 자신이 미 해군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는군요.
이 내용은 세계적인 권위의 에 등장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을 지은 것으로 유명한 허균(1569~1618)보다 내용 설명이 더 길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 우리 겨레가 만든 백과사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백과사전이 중요한 것은 바로 고드프리 같은 인물 때문입니다. 고드프리가 영원히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나라에서 만든 백과사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화석화된 종이 백과사전을, 아직도 개정하고 출간하는 나라들이 인터넷 망이 부족해서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신들의 손, 자신들의 시각으로 자신들의 역사와 세계 문명의 자취를 기록해야 할 까닭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김연아 선수가 마땅히 따야 할 금메달을 러시아의 소트니코바가 가져갔다고 흥분하는 것은 한두 시간에 그치면 어떨까요. 그 대신 금메달을 따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한 인류 문명의 어두운 부분까지, 나아가 스포츠를 정치도구화한 불합리한 21세기 정치판까지 우리 손으로 기록한 백과사전 한 권 만드는 데 그 애국적 열정을 쏟는 것이 우리 겨레의 앞날, 나아가 바람직한 인류 문명을 개척하는 데 더 가치 있다고 여기는 분이 없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제 길고 긴 동계 올림픽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메달을 따지 못한 수많은 대한민국 선수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저는 메달을 딴 선수 못지않게 따지 못한 선수들의 이름도 마땅히 기억되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아, 선수들뿐 아니라 동계 올림픽 뉴스의 홍수 속에 묻혀버린 그간의 국내 소식 주인공들 또한 당연히 기억되어야겠지요. 그리고 그 기록의 칠판은 가상공간이 아니라 실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비단 저만의 생각일까요?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