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곰발 실내화를 하나 가지고 있다. 예전 집이 외풍이 심한 편이어서 산 것이다. 지금은 애용하지 않지만, 해마다 겨울이 가까워 오면 신발장에서 꺼내 방 한쪽 구석에 놓아둔다. 사실 크기도 모양도 집에서 사용하기에 영 부담스럽긴 하다. 하지만 그저 곁에 두기만 해도 따뜻한 기운을 전해오는 것들이 있다. 북슬북슬한 곰발을 책상 밑으로 내밀고 난로 바로 뒷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급우가 어릴 적에는 얼마나 부러웠던지. 이제 겨울이 끝나가는 터라 신발장 깊숙이 털실내화를 돌려놓으려다가, 발을 한번 넣어 보았다. 미세한 이질감이 돌았다. 반대로 신었구나. 밑창이 두 짝 다 똑같이 생긴 타원형이라 왼쪽 오른쪽이 따로 없지만, 신다 보니 어느 샌가 왼발 오른발 모양에 따라 구분이 생긴 까닭이다. 곰발 속에 내 발이 들어갔다기보다는 왼발 속에 오른발이, 오른발 속에 왼발이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상한 감촉이다. 그래. 청바지를 입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가끔 헌 옷을 사기도 하고 친구나 동생이 안 입게 된 옷을 얻기도 하는데, 그 중 사이즈가 대충 맞아 집어 들고 온 청바지에는 어김없이 이전 주인의 허리와 골반과 허벅지의 흔적이 묻어 있다. 왼발의 흔적 속에서 오른발이 어색해지는 것처럼, 다른 몸의 흔적 속에서 내 몸이 겉돌 때도 괜히 수줍어진다. 있는 것만이 아니라 있었던 것의 흔적도 이렇게 살에 닿는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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