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천원 차이는 신경 안썼는데 이젠 100원도 아깝게 느껴져무이자 할부 유혹 앞에선 필요한 물건인지 고민 또 고민한 달 생활비 100만원 줄어 여윳돈으로 저축 시작계획 소비·모으는 재미 쏠쏠… 불상사 대비 비상금은 마련을
항상 빚을 안고 사는 느낌이 싫었다. 실제로 과소비를 하기도 했다. 세제 혜택도, 부가 서비스도 예전 같지 않았다.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양맹숙(52)씨는 그래서 작년 11월 신용카드를 과감히 잘랐다. 신용카드를 사용해온 지 30년 만이었다.
효과는 컸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체크카드와 현금만 사용한 결과 지출이 확 줄었다. 남편과 딸 둘, 4인 가족의 한 달 지출이 600만원 가량이었는데 5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양씨는 "카드를 쓸 때는 몇 천원 차이는 신경도 안 썼는데 현금을 쓰다 보니 100원 차이도 아깝게 느껴지더라"며 "지갑에 들어있는 돈만 쓰니까 계획적인 소비를 하게 됐다"고 했다.
물론 신용카드의 유혹은 여전하다. 그는 최근 전자매장에 텔레비전을 사러 갔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현금 160만원만 챙겨 갔는데 80만원이 부족했다. 무이자할부 3개월의 유혹을 참고 또 참았다. 양씨는 "물건을 사러 갔다가 현금이 부족할 때나 목돈이 필요하면 아무래도 신용카드 생각이 난다"며 "그럴 때면 이 물건이 내게 꼭 필요한 지 여러 번 되묻는다"고 했다. 병원비는 보험금으로, 자녀들의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냈다. 양씨는 "비상금도 어느 정도 마련해둬야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할 수 있다"며 "그게 신용카드 없이 살 수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덕분에 삶은 적잖이 풍요로워졌다. 매달 여윳돈으로 저축도 시작했다. 첫 달에 단 돈 몇 만원이라도 저금하고, 그 다음 달에 똑 같은 금액을 같은 통장에 넣고, 통장을 하나 더 개설해 저축하고…., 이런 방법으로 불과 두 달여만에 그는 두 딸 명의로 된 통장과 가족여행 통장, 경조사비 통장 등 총 4개의 통장을 새로 만들었다. 그는 "늘 '돈 없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제 아이들과 '우리 돈 모으면 뭐할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며 "씀씀이는 줄었지만 더 많이 가진 기분이 든다"고 웃었다. 그는 지난 19일 예비용으로 남겨뒀던 마지막 신용카드 한 장마저 잘랐다.
양씨만의 얘기는 아니다. 카드 정보유출 사고 이후엔 양씨처럼 신용카드에 등을 돌리는 이들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재테크 인터넷 카페 '짠돌이'에서 진행되는 굿바이신용카드 캠페인에는 올 들어 100명이 훨씬 넘는 이들이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카페를 통해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방법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카페 회원인 이모(36)씨는 "정보유출 사태 이후 카드를 정리하고 3주째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지출도 줄어들고 괜한 불안감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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