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한 軍훈련장은 게임장 전쟁기념관은 데이트코스로탄피로 기념품 만들어 성업도소액상품 면세 거래 등 활발작년 교역액 1900억弗넘어 이미 경제적으론 통일 시대
21일 오전 10시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廈門) 시내의 둥두(東渡) 국제크루즈터미널. 대만 진먼다오(金門島)로 가는 배는 시간마다 출발한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160위안(2만8,000원) 하는 표를 끊은 뒤 간단한 출국 심사를 받았다. 공안국 직원은 "하루 3,000여명이 이 곳을 통해 진먼다오로 간다"고 말했다. 샤먼에서 진먼다오로 가는 배는 이곳 이외에 우퉁(五通)부두에서도 탈 수 있다. 둥두에선 1시간, 우퉁에선 30분 밖에 안 걸린다.
300여명이 탈 수 있는 선실엔 사람들이 꽉 찼다. 파고 하나 없는 연둣빛 바다를 40여분 정도 가로 질르자 '삼민주의로 중국을 통일하자'(三民主義統一中國)는 붉은색 초대형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1997년 중국측이 샤먼 해안가에 '일국양제통일중국'(一國兩制統一中國)이란 대형 입간판을 세우자 대만에서 맞대응해 만든 표석이다. 중국에서 떠난 배가 어느 새 대만측 영해로 들어선 것이다.
얼마 후 배는 진먼다오의 수이터우(水頭) 부두에 닿았다. 이곳에서 입국 심사를 맡고 있는 왕덩톈(王登田) 과장은 "양안을 오가는 인력과 물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진먼다오의 현(縣)정부를 비롯 주요 기관들이 모여 있는 진청(金城)진 중심가는 부두에서 차로 10여분 거리다.
이곳에서 제일 유명한 곳은 중앙 버스 정류장의 민방갱도(民放坑道). 총연장 2,559m의 민방갱도는 중국의 대포 공격에 대비해 지하로 각 기관을 연결한 일종의 방공호 겸 땅굴이다. 그러나 이미 이곳은 한적한 관광지로 바뀐 지 오래다. 양안 관계가 화해 협력으로 돌아서며 1992년 대만 정부는 이곳을 작전 구역에서 해제하고 민방위 부대도 해산했다. 최근에는 갱도 중 일부가 고량주의 숙성고로 이용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곳 해설원 우신예(吳昕芮)씨는 "전쟁이 치열할 때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만든 곳이 이젠 명물이 돼 지역 경제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훈련장도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변신했다.
진먼다오에서 중국과 가장 가까운 곳인 구닝터우(古寧頭)의 전쟁역사기념관은 이곳이 65년 전 가장 치열한 양안 간 전쟁이 벌어진 곳임을 증명하는 장소다. 1949년 10월25일 자정 무렵 중국군 9,000여명은 200여척의 어선을 타고 이곳에 상륙, 진먼다오의 3분의 1을 점령했다. 엉겁결에 후퇴하던 대만군은 진열을 정비한 뒤 총공세에 나서 치열한 접전 끝에 결국 중국군 900여명을 생포하며 큰 승리를 거뒀다. 기념관엔 당시 장제스(蔣介石) 총통이 직접 와 군대를 사열할 때 탄 자동차도 진열돼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데이트 코스가 된 듯 했다. 대륙과 가까워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은 곳이지만 맑은 날엔 샤먼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경관이 좋은 전쟁역사기념관을 중심으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섬 둘레길을 도는 연인들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양안 격전지가 마음을 치유하는 명소가 된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당시의 포탄 껍데기를 잘라 주방용 칼로 만들어 파는 점포들이 성업하고 있는 장면이다. 중국은 1958년 8월23일 3만여발의 대포를 쏘는 등 1970년대 초까지 진먼다오에 모두 100여만발의 포탄을 퍼 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58년 한 해 숨진 군인과 민간인이 600명을 넘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의 포탄이 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 가업인 대장장이 일을 3대째 이어 오고 있는 우쩡둥(吳增棟)씨는 이 아이디어 상품으로 국내외 유명 인사가 됐다.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진먼다오가 평화의 섬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1978년 개혁 개방을 선언한 것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는 게 대만인의 생각이다. 전쟁역사기념관 안내원인 우위잉(吳毓潁)씨는 "중국의 대만 포격이 멎은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뒤 대만 자본과 기술이 중국으로 들어가면서부터"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요인은 이러한 양안 협력이 양측에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 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샤먼시의 택시 기사 류웨량(劉月亮)씨는 최근 푸젠성이 식수난을 겪고 있는 진먼다오에 파이프를 연결, 식수를 공급하기로 하는 등 양안 협력이 갈수록 활성화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예전엔 중국이 진먼다오를 포탄으로 공격했지만 이제는 경제를 앞세워 끌어 안겠다는 것"이라며 "중국과 대만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이 되고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일인데 누가 마다하겠느냐"고 강조했다.
중국의 샤먼과 대만의 진먼다오는 이미 경제적으로는 통일이 실현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곳이 샤먼시 다덩다오(大嶝島)의 '대만소액상품거래시장'이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대만 상품들을 관세 없이 1인당 6,000위안(105만원)까지 살 수 있는 곳이다. 당일 대만에서 들어온 식품과 상품이 시중보다 10~30% 저렴하다 보니 인기가 많아 현재 10배 크기로 확장 공사가 진행중이다. 다덩다오는 1949년 중국군이 진먼다오로 진격할 때 출항한 곳이었다.
지난해 양안은 서로 808만명이 오갔고, 교역액도 1,972억달러를 기록했다. 계산상으로는 중국이 지난 한 해에만 1,500달러 이상의 적자를 봤지만 결국 통일에 도움이 될 것이란 게 중국 판단이다. 대만소액상품거래시장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다덩다오와 진먼다오가 다리로 연결될 것"이라며 "양안 통일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신아 KOTRA 샤먼무역관장은 "2010년 중국과 대만의 자유무역협정인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로 한국과 대만의 대중 수출 상위 품목들이 중복되며 경쟁이 치열한 상태"라며 "양안 협력이 강화될수록 우리 기업들은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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