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사장만 '낙하산'으로 가는 건 아니다. 이 자리가 '큰 낙하산'이라면, 감사는 '중간 낙하산'쯤 된다. 그보다 더 '작은 낙하산'도 있는데, 사외이사들이 여기에 해당할 듯싶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중간 낙하산과 작은 낙하산이 수는 훨씬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기업, 특히 정부가 주된 개혁대상으로 삼고 있는 에너지ㆍ자원 공기업에 계속 투하되고 있다.
24일 취임하는 홍표근(61) 한국광물자원공사 감사는 대선 때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공동여성본부장을 지냈던 인물. 한국동서발전 감사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소통자문위원장이었던 강요식(53)씨가 꿰찼다.
사외이사로 가면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된 류승규(68) 전 의원은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선진비전 제4본부장을 맡았다. 과거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낸 조정제(62)씨도 한수원 사외이사가 됐다. 한국전력 사외이사에 최근 임명된 조전혁 전 의원과 이강희 전 의원도 역시 여권 출신이다.
물론 감사나 사외이사가 무조건 해당분야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경영진의 독주를 견제하고, 비리를 차단하고, 방만경영을 예방하는 기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커리어와 조건은 갖춰야 한다. 정치인 출신, 정당 출신이라고 무조건 배제할 이유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에 공기업 감사ㆍ사외이사로 임명된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자격조건과는 커다란 괴리가 발견된다. 만약 여권인사가 아니었다면, 대선 기여도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선임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현재 이들 에너지ㆍ자원 공기업들을 기본적으로 방만경영으로 규정, 강한 자구계획을 압박하고 있다. 사실 경영의 방만함을 차단하는 건 감사와 이사회의 일차적 역할이다. 감사의 감시기능, 이사회의 제어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기업이 망가진다는 건, 공ㆍ사기업을 떠나 불변의 진리다. 에너지ㆍ자원 공기업 경영이 이 지경이 된 것 또한 지난 정부, 또 앞선 정부에서 감사와 사외이사를 논공행상으로 임명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공기업 개혁을 하겠다면서 또다시 감사ㆍ사외이사를 낙하산으로 채우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이율배반은 없을 것이다.
정부의 공기업 개혁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말 교수신문 설문조사에서 '박근혜정부가 앞으로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하는 점'을 축약하는 사자성어로'공언무시(空言無施ㆍ빈말만 하고 실천이 없다)'가 꼽힌 것,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김정우 경제부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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