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동마을로 널리 알려진 충남 부여군 은산면 거전리는 칠갑산에서 뻗어 나온 산들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나물로 주로 먹는 원추리를 20년전부터 재배해 원추리 마을로도 불리는 이 곳은 산촌생태마을의 모범으로 꼽힌다. 지금은 청양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뚫려있어 면소재지에서 자동차로 불과 10분 거리지만 나이 먹은 어르신들에게는 아직도 험한 두메산골로 인식되고 있다.
정골, 사거리, 닭바실 등 3개 자연마을로 나뉘어 64가구 154명이 살고 있으며 경작지의 90%가 산지여서 주민들은 산나물과 약초를 캐서 생활해왔다. 2007년 산림청의 산촌생태마을로 지정된 후 지금은 밤과 약초 생산, 주민체험ㆍ숙박 시설 운영 등으로 가구당 평균 소득 6,000만원이 넘는 부자마을이 됐다.
두메산골의 부자마을 변신에는 신지식인으로 뽑힌 김은환(59) '백제인동마을 산야초공동체'대표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공기업을 다니다 20년 전 귀향한 그는 친척 할머니가 만들어 준 원추리 나물과 원추리 된장국을 맛본 뒤 그 효능에 대해 듣고 무릎을 쳤다. 원추리는 몸의 해독작용과 스트레스와 우울증 치료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 흔한 원추리를 잘 재배하면 소득작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당장 200평 밭에 원추리를 심었다. 이듬해 수확한 원추리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 내놓았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는 주민들을 설득해 원추리를 더 심고 작목반도 구성했다. 지금은 인근 마을 주민들까지 합세해 87농가가 참여하는 마을기업으로 성장했다.
원추리는 3~4월에는 새순을 채취해 팔고, 7~8월에는 휴양객들을 대상으로 한 꽃길 걷기, 그림그리기, 사진찍기의 배경으로 활용된다. 채취한 꽃은 말린 후 차의 재료로 판매한다.
김 대표는 사업추진과정에서 마을공동체의 회복에 역점을 뒀다. 체험관과 숙박시설 등의 부지도 마을주민이나 출향인들의 기증을 받아 건축했다."작은 소득이라도 함께 해야 기쁨도 함께 나누고 마을이 잘 유지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산채와 나물의 공동출하ㆍ공동정산 방식이다. 그는 "평균연령이 70세일 정도로 고령화된 마을에서 노인들이 산채나물과 약초를 생산해도 장에 내다 팔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생산물을 한데 모아 공동으로 출하하고 생산량에 따라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채택한 후 주민들의 참여가 늘었다"고 말했다.
낙후된 산촌 주민의 소득을 높이고, 지역간 균형발전을 목표로 시작된 산림청의 산촌생태마을사업이 거전리마을 등을 모델로 본격적인 활성화에 나선다. 1995년부터 지정된 산촌생태마을은 현재 240곳에 달하고, 주민 정주여건 개선, 체험ㆍ숙박시설 도입 등에 3,273억원의 예산이 지원됐지만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명무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산림청은 다음달부터 전국 산촌에 대한 기초조사를 실시하고 마을특성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도 실시하기로 했다. 또 운영이 잘 되는 산림생태마을과 연계해 주민현장학교도 개설할 계획이다. 경기 연천 고대산촌생태마을처럼 산림조합이 운영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임상섭 산림청 산림휴양치유과장은"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부활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산촌마을별로 특성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자들의 역량을 강화한다면 산촌생태마을사업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부여=글ㆍ사진 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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