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기업-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이들의 삼각 유착고리는 길고, 또 깊다는 게 증권가의 정설이다. 상장기업이 실적이나 증자 등의 정보를 공시 전에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미리 흘려주고, 이들은 다시 이 정보를 펀드매니저에게 전해준다.
금융당국이 이런 삼각 유착고리를 끊겠다고 매서운 칼을 꺼내 들었다. 이번만큼은 이들의 유착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예사롭지 않다. 그 첫 번째 대상으로 걸려든 CJ E&M 관련자들에 대해 무더기 중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전해지면서 증권업계도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상장기업이 증권사 애널리스트에게 내부 정보를 흘려주는 불공정 거래 행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만연해있다. 지난해 10월 3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를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애널리스트들에게 미리 알려준 CJ E&M의 경우처럼 분기별 결산실적과 같이 공시의무가 있는 중요 정보뿐 아니라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매실적 흐름이나 기술정보 등도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 받는다. 심지어 일부 업종 담당 애널리스트는 상장사로부터 실적 등 미공개 정보를 미리 전해들은 뒤 리포트 작성 시 미리 통보 받은 사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약간씩 숫자를 달리 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애널리스트는 "CJ E&M의 경우 당시 주가가 폭락하면서 공론화 됐을 뿐, 금융당국이 문제 삼으면 걸리지 않을 애널리스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기업과 증권사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의 '삼각 유착'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결과다. 기업은 애널리스트 등에게 미공개 정보를 흘려주며 자사의 주가 관리에 필요한 도움을 받고, 애널리스트는 평소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 기업이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발행할 때 자신이 소속된 증권사가 주관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편의를 받는 식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가치투자'라는 용어에 빗대 '같이 투자'라는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는 '개미'(개인투자자)들의 몫이다. CJ E&M의 경우 미공개 정보를 흘린 이후 기관투자자들이 주식을 급하게 내다 팔아 하룻동안 주가가 10%가까이 급락했다. 현재 금융감독원 조사를 받고 있는 게임빌도 지난해 6월 공시 전 정보를 미리 입수한 기관투자자들이 주식 23만주를 매도해 주가가 15% 가까이 급락했다.
CJ E&M 조사 건이 박근혜 정부가 주가조작 근절을 내세운 이후 설립한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의 첫 작품인데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처벌 대상으로 세운 첫 사례라는 점에서 업계는 향후 금융당국의 칼날이 어디까지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로부터 정보를 넘겨받아 실제로 이익을 챙긴 기관투자자들은 법규정이 없어 처벌이 불가능하다. 위법 행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처벌도 경미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에 수백만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지만, 우리나라는 2011년 금융위원회가 과징금 도입을 추진하다 부처간 이견으로 백지화된 바 있다. 과연 이번에는 유착관계가 근절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않은 이유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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