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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2월 24일] 언니의 말씨

입력
2014.02.2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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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절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광양에서 김밥집을 한다. 우연히 연락이 닿아 손 맞잡고 까마득한 기억을 들춰본 게 삼 년 전이었고, 이번에 언니 가게를 찾아간 것이 두 번째 만남이었다. 나를 반갑게 맞으며 김밥을 싸준 언니에게는 남도 말씨가 싹 배어 있었다. 신기했다. 천안에서 살던 언니가 남편 고향인 순천으로 내려온 건 겨우 육 년 전이다. 삼 년 전 만났을 때만도 분명 서울말을 쓰고 있었다. "와. 몇 년 살았을 뿐인데 어떻게 여기 말이 그렇게 입에 착착 감겨?" 언니는 정말 그러냐며 오히려 반문을 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긍께 니는 글 쓰는 사람이고 나야 가게 일을 오래 했잖냐. 손님들과 말 섞다 보니 그리 됐을라나." 그렇다면 언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드나드는 손님들을 통해 새 말을 익힌 셈이겠다. 흔히들 어른이 된 다음엔 머리가 굳어서 다른 말을 배우는 게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가 굳어서라기보다는 마음을 닫아걸기 때문은 아닐까. 익숙함 속에 편히 머물며, 서먹하고 불편한 것들을 심리적으로 피하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들은 엄마 뱃속과는 도통 닮은 데가 없는 낯선 이 세계의 말을 온힘을 다해 받아들인다. 어른이 되어서 언제 한번 그렇게 바깥 것들을 흡수한 적이 있던가. 몸에 익지 않은 '다른 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언니는, 사십대의 나이에도 마음을 활짝 열어둘 수 있는 어린애의 능력을 얼마쯤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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