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은자(61ㆍ가명)씨는 10년 넘는 병 수발 끝에 2012년 남편을 흉부암으로 잃자마자 난소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완치된 줄 알았던 암은 지난해 봄 재발했다. 윤씨는 이제 '언제 죽느냐'보다 '어떻게 죽느냐'에 더 관심이 간다고 했다. "예전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바빴는데, 아파서 남의 도움을 받으니 그 동안 내가 남을 위해 쓴 시간이 적다는 걸 깨달았어요." 윤씨는 얼마 전부터 집 근처 텃밭에서 감자와 배추, 울타리 콩을 가꿔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지난해 12월 13일 간암으로 숨진 고 이성규(당시 50세) 영화감독의 임종 과정은 품위 있는 죽음의 사례로 꼽힌다. 이 감독은 임종 11일전 대형 병원에서 호스피스로 옮겨 지인들과 차분하고 경건하게 작별했다. 그는 SNS를 통해 죽음을 앞둔 자신의 심경을 생생히 전달하기도 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이다.'(12월5일) '아직 훌쩍훌쩍 울곤 합니다만, 임종이란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두려운 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과정일 겁니다. 죽음의 과정이 내게 축제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12월3일)
준비 없이 맞는 죽음은 본인은 물론, 무의미한 연명 치료에 따른 부담이나 사후 재산 분할 문제로 가족에게까지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웰다잉'(Well-dying)을 염두에 두는 이들이 늘고 있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은 역설적으로 의학 기술 발달과 맞닿아 있다.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학 기술의 발달로 말기 암이나 고령에 따른 자연스러운 죽음을 인위적으로 지연시킬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환자들이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잃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웰빙 열풍과 마찬가지로, 평균적인 경제 수준이 높아져 예전에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높은 관심에 비해 웰다잉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이는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유독 죽음을 터부시하는 한국적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전병술 건국대 종교학 교수는 말했다. 전 교수는 "죽음에 대한 논의를 회피하고 삶을 강조하는 유교 전통의 영향으로 한국인은 삶을 기준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더 꺼린다. 죽음을 전제로 삶을 바라보는 실존주의 철학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진탁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소장은 전통의 단절과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원인으로 꼽았다. 오 소장은 "유ㆍ불교에도 나름의 죽음 문화가 있지만 근대 이후 급격한 서구 문물 유입으로 단절됐으며, 새로 들어온 기독교 등은 아직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해줄 정도로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 소장은 또 "생사(生死)관은 그 사회의 휴머니즘적 성숙도에 따라 그 수준이 결정되는데 한국은 1960년대 이후 주로 과학 경제 민주주의 같은 외형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공백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웰다잉 문화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임종 직전 부랴부랴 준비하거나 입관 체험 같은 이벤트성 행사에 자족하기 보다는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병술 교수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우리가 언뜻언뜻 느끼는 불안의 근원에는 '존재가 무(無)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며 "죽음을 인정하고 직시하면 불안감을 다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홍양희 전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회장은 "한국의 청소년 및 노년층 자살률이 높은 원인 중 하나는 죽음에 비춰 삶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죽음 교육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어려서부터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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