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이 열 다섯 번만 바뀌면 되는 시간, 보름. 그 보름이 63년 긴 이별을 한 모녀의 해후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22일 오전 9시 남북 이산가족 상봉 개별만남이 이뤄진 금강산 외금강호텔. 김용자(68ㆍ여)씨는 보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서정숙(90)씨의 영정을 가슴에 품고 북쪽 동생 영실(67)씨와 마주했다. 서씨는 이달 5일 심장 수술을 받은 직후 숨을 거뒀다.
서씨는 1951년 배를 나눠 타고 대동강을 건너던 중 남편(작고)과 작은딸 영실씨가 탄 배가 부서지는 바람에 용자씨만 데리고 월남했다. 그게 모녀의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9월 상봉 행사가 열리기만 했어도 모녀는 만날 수 있었다. 용자씨는 "어머니가 이번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수술실에 들어가셔서 더욱 안타깝다"며 "평소 '우리 영실이 한 번 보고 죽어야 하는데'라고 되뇌시던 어머니가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영실씨도 어머니가 생전 직접 준비했다는 내복을 건네 받고 소리 없이 울먹였다.
전날 '구급차 상봉'의 감동을 선사한 홍신자(84ㆍ여)ㆍ김섬경(91)씨는 결국 악화된 몸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이날 오전 개별상봉을 마치고 조기 귀환했다. 홍씨는 열흘 전 척추측만증 수술을 받았지만 동생 영옥(82ㆍ여)씨를 만나겠다는 일념 하에 상봉을 강행했다. 작별 전 동생 손을 부여잡은 홍씨는 "헤어지니 너무 슬프다. 너를 데려 갔으면 좋겠다"고 흐느꼈다.
노환에 고혈압, 거기에 상봉 직전 감기까지 겹치면서 구급차에 누워 금강산에 온 김섬경씨. 그도 잠시나마 딸 춘순(68)씨와 아들 진천(66)씨의 얼굴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말하는 것조차 힘겨운 김씨는 "여한이 없느냐"는 남쪽 아들 진황씨 물음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춘순씨는 병석의 아버지를 태우고 떠나는 구급차를 찾아 "돌아가시지 말고, 통일되면 만나자"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상봉 첫날 재회의 흥분을 누그러뜨린 이산가족들은 이날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개별상봉과 점심식사, 실내 단체상봉 등 6시간의 만남을 이어갔다. 남쪽 부모ㆍ형제들이 정성스레 마련한 초코파이, 의류, 생필품 등과 주로 북한 민속주를 준비한 북측 가족들간 선물 증정식도 열렸다. 다만 일부 남측 상봉단은 북측 가족들의 지나친 체제선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 남측 상봉자는 "자기들도 다 있다며 우리가 준비한 선물을 안 가져간다고 하더라"며 "체제선전만 하니 좀 지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전 7시35분쯤엔 한국도로공사 직원 이재준(46)씨가 2m 높이 대형 트럭에서 떨어져 팔 골절상을 입고 남측으로 후송됐다. 전날 내린 폭설로 외금강호텔 인근에서 밤샘 제설작업을 하다 발을 헛디딘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22일 오전 9시 1시간 가량의 작별상봉을 끝으로 헤어질 예정이다. 23일부터는 북측 희망자가 남측에서 올라간 가족을 만나는 2차 이산상봉이 2박3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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