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중국에는 얼마나 많은 정상급 신예 강자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중국에서 또 한 명의 새로운 세계대회 우승자가 탄생했다. 지난주 LG배서 우승을 차지한 퉈자시(23)는 지난해 응씨배서 우승한 판팅위(18)나 삼성화재배 우승자 탕웨이싱(21)과 마찬가지로 세계대회 첫 결승 진출에서 우승까지 단숨에 내달린 신예 강자다.
과거에는 중국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구리, 쿵제 등 몇몇 강자들이 국내외 기전을 석권했지만 최근에는 이른바 '90후 세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매 대회마다 우승자의 얼굴이 계속 달라지고 있다.
2011년 초부터 올해 LG배까지 모두 18차례 세계대회가 열렸는데 이 가운데 중국이 10번 우승했고 한국이 7번, 일본이 한 번 우승했다.
전체적으로는 그런대로 비슷한 성적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은 일곱 차례 우승 가운데 이세돌이 3번(2011년 비씨카드배, 춘란배, 2012년 삼성화재배), 백홍석이 두 번(2012년 비씨카드배, TV아시아) 우승했고 박정환(2011년 후지쯔배)과 원성진(2011년 삼성화재배)이 각각 한 차례씩 정상에 올랐다. 반면 중국은 2011년 LG배 우승자 파오원야오에서부터 쿵제(TV아시아), 장웨이제(2012년 LG배), 스웨(2013년 LG배), 저우루이양(백령배), 판팅위(응씨배), 천야오예(춘란배), 미위팅(몽백합배), 탕웨이싱(삼성화재배), 퉈자시(2014년 LG배)에 이르기까지 열 번 모두 새로운 얼굴이 세계타이틀을 차지했다. 대체 중국이 보유한 정상급 신예들의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말 그대로 열 손가락으로는 미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대회마다 새로운 우승자가 배출되다 보니 중국 랭킹 10위 안에 세계타이틀 보유자가 무려 8명이나 되고, 때로는 세계대회 우승자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게다가 20~30위권에 이름조차 생소한 신예 강자들이 호시탐탐 정상권 진입을 노리며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매달 랭킹 순위가 큰 폭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중국에 세계 정상급 기량을 갖춘 신진기예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뜻이다. 과거 한국에서 '국내기전 본선 올라가기가 세계대회 우승하기보다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돈 적이 있는데 지금 중국 바둑계가 바로 비슷한 상황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2012년 말 이세돌의 삼성화재배 우승 이후 1년이 넘도록 세계대회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내 랭킹도 큰 변화가 없어 순위가 점차 고착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곧 밑에서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얼굴이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군 복무 때문에 벌써 1년 넘게 제대로 기사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백홍석, 원성진이 아직도 굳건히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한 마디로 중국은 정상급 신예 강자들이 넘쳐나는데 반해 한국은 쓸 만한 신예 기사를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 차이가 바로 최근 한국과 중국 바둑의 큰 격차를 초래하게 만든 주범이다.
지난 20여 년간 중국은 한국 바둑을 넘어서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국가대표팀과 국가소년대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집중적인 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바둑리그 창설을 비롯, 대회 운영 면에서도 철저한 경쟁체제에 기초한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바둑붐 조성에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전성기를 거치면서 눈앞의 과실을 따먹는데 급급해 미래를 위한 투자에 소홀했다. 최근 들어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부랴부랴 상금제 도입, 국가대표팀 창설, 입단대회와 연구생제도 개편 등 이런저런 대책을 마련했지만 장기적인 안목이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바람에 당초 의도와 달리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 바둑이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흔히 하는 말처럼 위기는 곧 기회다. 과거 중국이 한국을 넘어서기 위해 20여 년 동안 절치부심했듯이 이제는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때마침 홍석현 한국기원 총재 취임을 계기로 한국 바둑 중흥을 위한 새로운 비전이 제시되고 재도약의 발판이 구축될 수 있을지 바둑계의 기대가 크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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