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통일이 화두가 되었다.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언급한 뒤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박'이라는 말이 정식 용어가 아닌데도 뱉어낼 정도로 마음이 쏠린 모양이다. '흥행이 크게 성공하다' 또는 '큰돈을 벌다'는 뜻으로 쓰이는 대박이 국어사전에도 정식으로 오를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모양이다.
나름대로의 정보 판단에 따른 것이겠지만, 조금 비판적으로 보면 불쑥 통일을 꺼낸 속내는 그리 곱게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권력자들은 그동안 그 용어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10월유신조차 '통일이 될 때까지' 상당한 민주주의적 가치를 유보하겠다는 친위쿠데타였다. 지금 다시 통일을 꺼내는 건 다른 점에서 보자면 그것 말고는 달리 할 말도 없고 꼬인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방법도 없어서 택한 비상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면이 읽히는 건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통일을 외치고 떠들지만 제대로 결실 맺지 못한 것은 그런 정치적 목적으로 오용된 까닭도 있으나, 우리들 자신이 그것을 관념적으로 또는 막연하게 꿈만 꾼 탓이기도 하다.
사실 통일이라는 가치는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일 수 없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 모두에게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화두는 던져졌다. '뜬금없이' 던진 이 화두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제발 관념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막연한 총론으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통일의 대상은 분명 북한이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그들은 철저히 공산주의자들이다. 빨갱이들이다. 그런 그들과 통일하려면 어떻게 그들을 압도하고 설득할 것인가?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가 온전히 실현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종북이니 좌빨이니 몰아대며 소통하자고 하면 소탕하려드는 이들이 과연 원조 빨갱이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또 어떤가. 저들은 계획경제, 통제경제이다. 공산주의 경제는 이미 지난 세기말에 완전히 무너졌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의 합리성과 생산성은 이미 저들을 압도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평등성이라는 점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을 인격성과 인간의 가치라는 토대 위에서 보완하지 않으면서 무슨 대화를 하고 무슨 통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신자유주의 경제가 빚어내고 있는 폭력성과 비인격성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 때 표를 얻자고 내건 경제민주화조차도 모두 파기한 마당에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것인가. 우리의 경제 체제가 우월함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경제민주화를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을 위한 밑돌이다.
나는 에서 인문학의 주제와 대상을 12개의 항목으로 나눠서 서술했다. 그 항목들을 하나씩 통일에 대비해보면 새롭게 해석되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냥 총론으로, 거대담론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관념적으로 던지는 화두가 되면 안 된다. 대답 없는 상대에게 던지는 통일이라는 화두이기 이전에 우리 사회 내부에서 지닌 문제를 짚어보고 반성하며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게 진짜 통일에 대한 접근의 태도이다. 홍위병들 앞세우고 거짓과 허물을 가리며 억압할 게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격성을 고취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의 의미이다. 화두만 툭 던져놓고 거기에 다른 갈등과 허물을 묻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허물을 반성하고 쇄신하는 계기로서의 통일 담론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우월하다고 해서 그냥 흡수통일될 거라는 망상부터 깨야 한다.
통일이라는 화두는,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우리에게 던져진 선물이다. 그저 포장지만 그럴 듯한 게 아니라 알맹이가 꽉 찬 선물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짜 대박이 되는 통일일 것이다.
김경집 인문학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