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사실은 관련 피해자들의 구술뿐 아니라 일본 정부의 공문서 등에 의해서 그 증거가 뒷받침되고 있다. 그럼에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20일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밝힌 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본격 대응하려는 중국에 대해 사전에 선을 그으려는 전략적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센카쿠 열도 점유권 분쟁 등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은 과거 역사 문제를 부각시키며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동아시아 주도권 싸움에서 일본이 더 이상 중국에 밀려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중국이 위안부 문제에 본격 대응하는 시점에 방어선을 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일본이 위안부 관련 자료를 조직적으로 폐기해 거의 남아 있는 게 없다"면서 "그러나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에 여전히 생존한 피해자들의 구술뿐 아니라 (소수이지만) 문서를 통해서도 자료는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의 증거는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 교수가 1993년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한 일본군 공문서 6점에도 분명히 드러난 바 있다.
일본 참모부가 1938~1942년 위안소의 설치, 운영과 관련해 중국 지역의 각 부대로 보낸 이 공문서는 위안부 여성의 모집 방법과 할당 인원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1938년도 공문서를 보면 중국 내 일본군의 성폭행 사건이 빈발하니 서둘러 위안소를 설치할 것과 위안부 모집을 위해 지방 헌병, 경찰과 협력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위안부가 일본의 주장처럼 민간업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본군의 필요로 계획됐고, 명령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위안부 강제동원 문서를 발견하기는 쉽지가 않다. 일본 정부는 전쟁이 끝난 직후 위안부 동원과 관련한 부처인 외사과와 노무과, 경무과 등 자료들을 조직적으로 폐기해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명숙 충남대 국가전략연구소 전임염구원은 "동아시아 지역 점령지와 달리 한국에서는 군인의 직접 개입이 아니라 식민 지배 하에서 교묘하게 동원됐다"면서 "그런데 이를 '증거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건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는 위험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일본은 조선 총독부와 관련한 자료는 거의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연구원은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에는 동원 형태뿐만 아니라 동원돼 구속되고 그만둘 자유가 없는 것 등도 포함된다"며 "식민지 지배의 맥락을 이해하고 다양한 피해 형태를 살펴야 하는데 아베 내각은 식민 제국에 대한 잘못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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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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