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는 여느 해보다 더 지갑을 꽁꽁 닫았다. 소득은 찔끔 늘어난데다 경기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낮았기 때문이다. 호황이라는 수출과 달리 가계 씀씀이는 씁쓸한 불황형 흑자에 시달린 것이다.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평균소비성향은 73.4%로 전년보다 0.7%포인트 떨어졌다. 예컨대 처분 가능한 돈이 100만원이라면 73만원만 썼다는 얘기다. 평균소비성향은 쓸 수 있는 소득에 대한 소비지출액의 비율을 뜻한다. 연간 평균소비성향은 3년 연속 하락세를 보이면서 이번에는 통계가 산출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서운주 복지통계과장은 "정부의 보육 지원 등으로 가계지출이 정부지출로 바뀐 영향도 있지만 향후 경기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지갑을 닫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지난해 4분기 평균소비성향은 73%로 전년 동기보다 1.2%포인트 올랐다. 2011년 2분기 이후 30개월 만에 처음 상승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4분기 들어 소비개선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 올해 소비지출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16만원으로 전년보다 2.1%늘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1.2%) 이후 가장 낮고, 2004년 이래 가장 작은 증가폭을 보인 것이다. 물가상승률(1.3%)을 감안한 실질 월평균 소득 증가율은 0.8%에 불과했다. 소득이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월평균 소비지출도 248만1,000원으로 0.9% 늘어나는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0.4%나 감소했다.
소득은 늘었지만 사실상 소비가 줄면서 가계 흑자금액(90만원)과 흑자비율(26.6%)은 2003년 통계 산출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불황형 흑자였던 셈이다. 보육 지원 등으로 교육 관련 지출(-1.8%)은 줄었지만 주거 관련 지출(4.2%)은 늘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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