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이 먼저 눈길을 끈다. "우리가 온라인 공간에 들어갈 때, 신용카드를 쓸 때, 여권을 보여주거나 정부 보조를 신청할 때 과연 우리 내면에 감시 권력을 어떻게 새겨 넣는 것일까요?"… "그것은 신체와 기술, 생산력과 적극적 저항, 그리고 시선의 상호성 혹은 은폐 등으로 이름붙일 수 있습니다… 지그문트, 이것이 제가 당신에게 파놉티콘에 관해 질문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83~85쪽)
'유동하는 현대' 개념을 주창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캐나다 퀸즈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라이언이 주고 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다. 16세기 기대승과 이황이 편지뭉치 속에서 벌인 이기(理氣)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오고 간 두 저자의 서간문은 21세기의 그것답게 이메일의 형태인데, 그 편리를 가능케 하는 인터넷 프로토콜을 포함한 현대사회의 거대한 감시 구조를 고찰하는 게 논쟁의 주제다.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되는 권력의 민간인 사찰과 불법 도감청, 신용카드를 쓴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몰래 까발려진 내밀한 개인 정보들, 연일 국제 뉴스의 톱을 장식하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소식…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연상케 되는 개념이 '빅브라더'다. 조지 오웰이 소설 에 묘사한 것처럼 우악스럽지는 않지만, 훨씬 광범위하고 한층 정교해진 감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책은 21세기형으로 진화한 빅브라더를 해부해 보여준다.
독창적인, 책에서 가장 뾰족하게 만져지는 논지는 이른바 '자발적 복종'이다. 공포와 은폐가 아닌, 순응을 21세기 감시사회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현대적 감시에서 전면으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 그것에 약간의 의혹을 제기하지만 감시를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감시 게임에 가담하겠다고 결심하는 보통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시민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점검과 감시, 시험을 받고, 평가되며, 값이 매겨지고, 판정을 받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페이스북 같은 소설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공적 미덕이자 책무로 알고 살아가는 현상을 21세기 빅브라더가 기생하는 정황적 숙주로 간파하는 저자들의 시선이 날카롭다. 구글링을 할 때 자신이 검색한 기록이 축적되고 그것이 전지구적 감시 체제의 뼈대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협조'하고 '충성'하고 마는 현대인을 꼬집는 부분 또한 탁월하다. 책으로 묶여나오면서 편집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본래 학자들 간의 편지글이었던 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는 게 흠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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