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한 임은정(40ㆍ사법연수원 30기) 창원지검 검사에게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내린 것은 지나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 문준필)는 21일 임 검사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소송에서 "징계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임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공판 검사로 있던 2012년 12월 반공임시특별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이 확정된 고 윤중길 진보당 간사의 유족이 청구한 재심 사건에서 검찰 상부의 백지(白紙) 구형 지시를 어기고 무죄를 구형했다. 앞서 그는 내부 논의 과정에서 무죄 구형을 하다 업무에서 배제됐으나 재판 당일 법정에 나가 사건을 재배당 받은 다른 공판 검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법정 출입문을 잠근 채 무죄 구형을 강행했다가 징계를 당했다.
재판부는 "무죄 구형은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따르지 않은 행위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전제하면서 "(상부가 지시한) 백지 구형은 사실상 무죄 구형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는 등 적법한 구형임을 감안하면 임 검사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법정 출입문까지 잠그고 구형을 한 행위는 일반적이지 않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임 검사를 업무에서 배제한) 직무이전명령은 검찰총장과 각급 검찰청장 및 지청장의 권한이므로 부장검사가 명령한 것은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징계 사유를 인정하면서도 임 검사의 손을 들어준 것은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을 이끌다 항명 논란을 빚은 윤석열(54ㆍ23기) 대구고검 검사가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은 것과 비교해 과중한 처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윤 검사의 행위는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직하는 등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이 훨씬 크다"며 "정직 같은 중징계 처분이 금품수수, 직무상 가혹 행위 등 비위 정도가 극심한 경우에 이뤄져 온 점 등까지 고려하면 임 검사에 대한 징계 수위는 지나치게 과하다"고 지적했다.
임 검사는 선고 직후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서 부장검사가 직무이전명령 권한이 없다는 주장이라도 받아들여져 감사한 마음이다"며 "쉽지 않은 길이라 각오한 만큼 1심에서 이 정도 결과면 대법원까지 씩씩하게 소송에 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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