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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간다는 건…

입력
2014.02.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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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살에 미얀마를 떠나 온 탄민우씨는 어느새 마흔네 살이 됐다. 오랜 기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4년 전 난민으로 인정 받았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미얀마 여성과 결혼한 그는 고국의 정치 상황이 좋아지면 고향으로 돌아가 소박하게 살 생각이다.

#조선족 하영란씨는 한국으로 시집온 지 6년이 넘었다. 그는 한국말을 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줄곧 위축된 삶을 살았다. 자민족 중심주의가 강한 한국인들이 조선족 말투가 드러나면 무시하거나 또는 무조건 동정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일이 많았던 탓이다.

두 사람처럼 태어나지 않은 특정 국가에서 12개월 이상 체류하는 사람을 유엔은 '이주자'로 분류한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해외로 사람을 내보내는 이주 송출국이었던 한국은 2000년대 들어 이주 유입국으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주변에서 이 같은 이주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급기야 단일문화주의를 신봉했던 한국 사회에는 2006년 정부의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의 전환' 선언 등을 거치면서 '다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표방하는 한국 사회가 과연 이주자의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2003년부터 이주자 연구에 매달려 온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의 다문화주의 논의는 취약계층과 동의어처럼 쓰이는 '다문화 가족' 정책으로 환원됐고, 이들을 영구적인 주변부 계급으로 고착화하는 문화적 폭력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는 김 교수가 10년 간 만난 결혼이주 여성, 조선족 동포, 미등록 이주노동자, 난민 등의 목소리와 이를 바탕으로 한 이주자 연구의 성과를 담은 책이다.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라는 부제 아래 이주의 현실과 배경 및 이주자의 삶의 형태를 분석하고 진정한 사회 통합의 길을 모색한다.

저자는 산업화 시기에 해외로 떠난 한국인들이 돈을 벌기 위한 전형적인 '경제 이주자'이었듯 외국인의 한국 이주는 자유주의적 자본의 흐름에 대한 작용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경제로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값싼 노동력을 선호하는 영세 제조업체들은 인력난을 겪으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야 했다. 세계 자본주의 질서 속에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국제적 규모의 인적 이동이 동시에 진행됐다는 것이다. 또한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 결혼시장의 성비 불균형 등 인구학적 위기로 중국 및 동남아 여성들이 결혼 배우자로 대거 유입됐다. 결국 외국인 이주자는 한국 사회의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선택으로 동원되면서 위험하고 낙후된, 낡은 인습의 영역에 머물게 됐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국을 좀 더 민주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주자의 언어를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저자의 논지는 문화 간의 상호 인정과 존중이라는 다문화주의의 이상을 묘사한 마지막 장에 방점이 찍혀 있다. 책에 따르면 한국의 다문화 담론은 이주 노동력의 통제와 관리에 목적을 둔 정책 및 제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선주민 교육이나 의식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가 요구된다. 이주자 고유의 정서와 가치관에 관심을 기울이는 공존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누구나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집을 떠나 이주자 신분이 될 수 있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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