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미국 뉴욕 제빗 연방건물 광장에 거대한 작품이 설치됐다. 높이 3.7m, 길이 36.6m의 리처드 세라 작 '기울어진 호'는, 작품이라기보다 거대한 철벽이었다. 당시 미술 평론가들은 "보행인의 움직임에 따라 광장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만드는 훌륭한 공공미술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광장을 이용하는 이들은 작품 때문에 시야가 차단되고 광장을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한다며 철거를 요구했다. 논란은 결국 법정싸움으로 비화됐고, 1989년 '기울어진 호'는 결국 철거됐다.
이 사건은 공공미술의 형용모순적 성격을 말해주는 대표적 사례다. '대중을 위한 미술'을 뜻하는 공공미술은, 그러나 한국에서는 좀처럼 대중을 향한 적이 없다. 해방 이후 설치된 위인 동상들은 국민에게 국가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도구로, 건물 앞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했던 조각 작품들은 일부 작가와 화랑의 담합 통로로 사용됐다.
는 작금의 상황에서 공공미술의 개념을 바닥부터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책은 국내 공공미술의 역사를 편년체식으로 나열하고 정부의 예술 몰이해를 비판하는 것으로 끝맺는, 기존 담론에서 한 발 비켜 예술가의 입장에서 흥미로운 물음들을 던진다. '역사적으로 근대 예술이 탄생하기 전의 도시 속에서는 공공예술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공공예술이 근대적 미술 개념인 '사적 미술'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라면, 예술이 사회를 위한 예술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로, 다시 사회를 위한 예술로 변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술은 왜 '공공'이라는 용어와 접목하려 하며, 접목해야 할까? 아니면 접목 당하고 있을까?'
저자는 국내 공공미술의 성과를 판단하기 보다는 공공미술이 탄생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미술사,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범주인 사회의 변화에서 찾는다. 자기충족적 성격을 띠었던 모더니즘 예술이 한계에 부딪히자 그 대안으로 공동체적 예술이 부상했다는 견해는 이미 정설에 가깝지만, 저자는 이 견해를 향후 국내 공공미술이 취해야 할 방향에 구체적으로 대입하는 데까지 나간다.
실제 부산 각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저자는 정부의 도시재생 사업에 예술가를 이용하는 것, 반대로 예술가가 공공미술의 시대적 필연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품 활동을 하는 것, 모두를 솔직하게 지적한다. "거듭 얘기하지만 예술은 그 자체가 공공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 또는 사회나 경제가 예술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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