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만에 재회한 혈육들의 눈물이 설경(雪景)으로 뒤덮인 금강산을 가득 적셨다.
20일 오후 3시 설 계기 이산가족 상봉 첫 행사가 열린 북한의 금강산호텔은 우리측 상봉 대상자 82명(동행 58명)과 북측 가족 178명이 토해 낸 오열로 들썩였다. 2010년 10월 남북이 마지막 상봉 행사를 치른 지 3년 4개월 만이었다.
"언니, 저에요. 왜 듣질 못해. 응?"
이영실(88ㆍ여)씨는 북쪽의 둘째 딸 명숙(67)씨와 동생 정실(85)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치매가 심해진 탓이다. 6ㆍ25 전쟁 당시 명숙씨를 시부모에게 맡기고 남편과 잠시 남쪽으로 피신해 있다는 게 어느덧 63년이 흘렀다. 동행한 남쪽 딸 성숙씨가 "엄마, 명숙아 해봐요. 엄마 딸!"이라고 아무리 재촉해도 "그래요?"라며 눈만 껌뻑댔다. 동생 정실씨는 그런 언니에게 사과를 깎아 건네며 연방 눈물을 훔쳤다.
김영환(89)씨는 혼자 피난을 내려오는 바람에 헤어졌던 북쪽 아내 김명옥(86)씨와 다시 만났다. 유일한 부부 상봉자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도 잠시, 부부는 서로를 애써 외면하며 침묵을 이어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소감이 어떻느냐는 물음에 "좋지요"라는 짤막한 한마디가 전부였다.
"눈이 푹 꺼지고 마른 체형이 나랑 닮았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맞네."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지만 부자의 정은 어쩌지 못했다. 1ㆍ4후퇴 때 홀로 북한을 떠났던 강능환(93)씨는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들 정국(63)씨와 처음 대면했다. 원순실. 4개월에 불과했던 짧은 결혼생활 탓에 까맣게 잊었던 북쪽 부인 이름도 알게 됐다. 선반 일을 하다 오른손 엄지를 잃은 아들의 거친 손을 매만지며 강씨는 말없이 눈물지었다.
감동의 '구급차 상봉'도 있었다. 전날 건강 악화로 상봉 여부가 불투명했던 김섬경(91)씨와 홍신자(84ㆍ여)씨는 기어이 이산의 한을 풀었다. 김씨는 딸 춘순(68)씨와 아들 진천(65)씨를, 홍씨는 동생 영옥(82)씨와 조카 한광룡(45)씨를 비좁은 구급차 들 것에 누워 만났다. 그러나 두 사람은 더 이상 행사 참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의료진의 만류로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21일 오전 개별상봉 후 귀환할 예정이다.
이날 상봉에는 전쟁 때 북에 남겨진 3명과 이후 북에 끌려간 2명의 납북자들도 남측 가족과 감격적인 만남을 가졌다. 오후 7시17분 한결 누그러진 표정으로 만찬장에 나타난 남북 이산가족들은 못다한 얘기를 이어갔다. 리충복 북한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북과 남이 공동의 노력으로 마련한 소중한 결실"이라고 환영사를 하자, 우리측 단장인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이산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인도적 사업"이라고 화답했다. 눈물의 상봉은 21일에도 개별 만남과 점심식사, 실내상봉을 통해 계속된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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