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은 2009년 5월부터 영어, 일본어, 중국어, 몽골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 6개국 언어를 구사하는 상담원들을 배치한 외국인 콜센터를 운용하고 있다. 이들 언어를 통해 해외송금이 가능한 자동화기기(ATM)와 9개 외국어 중 선택이 가능한 인터넷뱅킹도 제공한다. 외환은행은 미ㆍ중ㆍ일 3국은 물론 베트남, 네팔, 태국, 방글라데시 등 지역별 외국인 마케터를 채용한다. 일요일에는 일부 점포에서 외국인 고객에게 모국어 상담서비스도 해준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위치한 서울글로벌센터 한 켠에는 삼성화재 창구가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보험 상담을 위한 곳이다. 삼성화재는 외국인이 편하게 상담할 수 있는 전문 컨설턴트 45명을 육성했고, 외국어로 365일 접근이 가능한 홈페이지를 통해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이처럼 국내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각종 언어로 지원하는 이유는 뭘까. 당연히 급증하는 외국인 체류자가 신규 시장이 된다는 판단이 1차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현지화를 해외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해외 성공을 위해서는 현지인의 문화, 정서, 니즈를 알아야 하므로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해당 서비스노하우를 축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귀띔한다.
지금까지 많은 금융사들이 해외에 진출했지만, 그 성과는 초라하다. 최근 몇 년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국내은행들의 해외영업점 총자산 규모는 715억달러(작년 6월말)로 국내은행 총자산의 4.3%에 불과하다. 금융회사들이 무턱대고 해외에 나가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치밀한 현지화 전략을 세우는데 주력하고 있는 이유다.
국민은행은 해외진출 핵심키워드를 '현지화'로 꼽고 인도 최대 민영은행인 ICICI은행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현지기업 및 현지인을 대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금융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초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으로부터 현지에서 110여개 점포를 보유한 사우다라은행 지분 33% 인수에 대한 최종 승인을 받아 현지 서민과 소상공인을 상대로 한 소매영업 규모를 키울 계획. 하나금융도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도네시아 하나은행을 발판 삼아 2025년까지 그룹 전체 이익의 40%를 해외에서 거두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역시 이미 진출한 15개국 71개 네트워크를 통해 현지사회공헌 등을 통한 차별화로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도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한다고 밝혀 전망은 밝은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20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금융권이 신수익원을 적극 창출할 수 있도록 해외시장 진출 장애요인을 개선하고 각종 지원방안을 병행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화' 분위기에 휩쓸린 성급한 진출과 무분별한 투자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2009년 홍콩법인을 설립한 뒤 막대한 손실을 입고 3년 만에 철수한 삼성증권과 2008년 9,392억원을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에 투자했다가 각종 투자실패와 현지화폐의 평가절하 등으로 지분가치가 680억원으로 급락한 국민은행 등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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