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 낙하산 방지대책을 내놨다. 공공기관 개혁에 나서려 할 때마다 "공공기관 조직원들을 설득해 개혁에 동참시키려면 정부의 낙하산 인사 관행부터 없애라"는 타박을 받는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신한 대책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다, 기업의 불공정거래 관행 감시와 소비자보호를 주임무로 하는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공공기관 개혁 작업에 나서면서 실효성보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일 기획재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산하에 '임원자격기준소위원회'를 만들어 임원 직위별 세부자격 요건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 인사나 군인 및 경찰 출신 등 비전문인이 공공기관 임원으로 임명되는 관행을 막겠다는 것이다.
제시된 기준은 '5년 이상 관련 업무경력 등 계량화한 임원 자격기준 보유'다.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적용 시 해석의 여지가 넓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치인이라도 국회 관련 상임위 경험이 있다면 해당 경력으로 인정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군인이나 경찰 출신은 대규모 조직을 운영해 본 경력을 리더십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설명대로라면 낙하산 방지대책이 아니라 '낙하산 면죄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국회 특정 상임위에서 활동했던 인사가 그걸 경력으로 삼아 산하 기관 임원으로 임명된다면 국회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 온전히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박근혜정부는 강도 높은 공공기관 개혁을 강조하면서도 지난 연말, 연초 공공기관에 40명이 넘는 무더기 낙하산을 내려 보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낙하산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지난해 12월)라며 정당화하려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놓은 대책이다 보니 자가당착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조치가 오히려 소수 특권층의 낙하산 관행을 더 강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은 "정부가 제시한 자격 기준을 충족시키려면 변호사,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 인력풀이 소수에 국한되고 이들이 공공기관 임원을 독식하는 회전문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라며 "선임 과정보다 중요한 선임 이후 평가 시스템이 빠진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미 수많은 낙하산이 투하된 후 나온 뒷북 대책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공공기관 개혁방안의 일환으로 기업분할, 자회사 신설 등 공공기관 경쟁체제 도입을 제시한 것도 우려된다. 노조 등의 저항이 거세지고 자칫 민영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날 업무보고에서 공공기관의 불공정거래 관행 근절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을 놓고도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는 자회사를 늘려 일감을 몰아주는 등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공기업들의 불공정거래가 만연하다는 판단에 따라, 공기업 거래업체를 대상으로 상반기 서면 실태조사, 하반기 현장 직권조사를 할 예정이다. 공기업에 대한 직권조사는 5년 만이다.
대상은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가스공사, KT, 포스코 등 11곳이다. 일각에선 이미 민영화한 포스코 KT도 포함돼 혼란스럽다고 주장했다. 공기업 관계자는 "시장의 효율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영역을 주로 담당해야 하는 공기업 고유의 특성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재부는 ▲공사채 발행 총량관리제 도입 ▲헐값 매각 논란을 피하기 위한 자산 매각 시기 분산 및 선진금융기법 동원 ▲공공기관 정보공개 확대 ▲공공기관 퇴직 임직원이 취직한 업체와 2년간 수의계약 금지 ▲공공기관 인턴 참가자 70% 이상 정규직 채용 등의 공공기관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금융위원회는 유사중복기능 통합(산업은행-정책금융공사 등)과 기존의 방만경영 및 과다부채 해소 방안을 제시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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