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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안락사, 동물 보호 위한 조치라는데… 최선의 방법인가

입력
2014.02.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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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보존·생물 다양성 확보" 덴마크 동물원서 기린 안락사 후 사체 해부해 사자에 먹이로 줘 논란"야생 송환·피임 시도했어도…" 안락사에 세계적 비난 여론 불구… EAZA" 협회 지침 따랐다" 반박관광 도움되는 백사자는 근친교배 EAZA 주장에 위배 되는 행위"돈 되는 동물만 살려 두는 셈" 지적

지난 9일 덴마크 코펜하겐 동물원에서 두 살 된 수컷 기린 마리우스가 전기충격기인 볼트 건(Bolt gun)으로 도살됐다. 안락사 조치다. 동물원에 있는 다른 암컷들과 근친교배를 막아야 한다는 목적이었다. 마리우스의 사체는 어린이를 포함한 관람객들이 보는 앞에서 3시간 동안 조각조각 분리돼 사자 먹이로 던져졌다.

그 뒤 전세계가 비판 여론으로 달아올랐다. 마리우스 안락사가 예고된 뒤 2만7,000명의 사람들이 그를 살리기 위한 인터넷 탄원운동에 동참하는 등 이번 결정을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코펜하겐 동물원 홈페이지에는 "무고한 어린 기린을 죽이는 짓은 야만적이다" "아이들 앞에서 기린을 부검해 사자 먹이로 주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등 비난 글이 쇄도했다.

그러나 코펜하겐 동물원은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다"며 "시민들은 더 큰 그림을 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동물 안락사는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일부 시민도 "인간이 멸종위기로 몰아넣은 동물들을 장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마리우스의 안락사를 비난하는 건 위선"이라고 동물원을 옹호했다.

그러나 비난 여론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고 있다. 최근 덴마크 서부에 있는 윌란츠파크 동물원도 일곱 살 수컷 기린을 도살할 것이라고 밝혀(다행히 이 계획은 취소됐다) 논란이 더욱 가열됐다. 공교롭게도 이 기린의 이름 역시 마리우스였다. 마리우스의 죽음이 동물원의 역할과 안락사의 윤리적 문제 등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고 있다.

코펜하겐 외에도 동물안락사 수두룩

"동물원은 디즈니랜드 같은 테마파크가 아니다." 코펜하겐 동물원의 벵트 홀스트 연구보존책임자는 마리우스의 안락사에 대한 논란을 이런 말로 일축했다. 그는 마리우스를 도살한 장본인으로 지목되면서 최근 전화와 이메일 등을 통해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홀스트는 CNN에서 "동물들의 근친교배를 막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 동물들의 건강 유지와 보존을 위해 필수적"이라며 "동물원은 놀이시설이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점차 서식지를 뺏기고 있는 동물들의 마지막 생존 보호처"라고 말했다.

실제 코펜하겐 동물원의 이번 조치는 유럽 전역의 345개 동물원이 회원으로 있는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등 전세계에 걸쳐 연간 약 600억 마리의 동물이 인간의 사냥 등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1828년 설립된 EAZA는 멸종위기종 보존과 생물다양성 확보를 위해 유럽혈통대장(ESB)과 멸종위기종프로그램(EEP)을 회원 동물원을 상대로 엄격히 실시하고 있다.

ESB는 EAZA 소속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의 출산과 사망, 이송 등에 관한 기록을 모두 수집, 기록해 일종의 혈연 관계 등이 포함된 혈통대장을 만드는 일이다. 일종의 동물 부모와 친척 등이 담긴 족보를 만드는 것이다. EEP는 이 같은 ESB 자료를 바탕으로 EAZA 내 유전자 지도를 만들고 매년 각 동물들의 교배 여부와 시기, 최종적으로 안락사까지 결정한다. ESB 혈통대장에 따르면 EAZA 내 동물원에는 약 700마리의 기린이 있으며 이들 중 대다수가 마리우스의 근친 관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펜하겐 동물원이 마리우스의 안락사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ESP의 지침에 따라 마리우스의 유전자가 기린의 보호와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EAZA는 EEP와 ESB 두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 동물원에 있는 약 340종의 동물을 관리하며 지난 100년 동안 동종 동물 간 유전적 차이를 90%까지 벌리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근친 관계가 아닐수록 교배에서 나오는 새끼가 더 건강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동물 안락사는 중요한 수단이다.

EAZA는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그 수치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얼룩말과 들소, 영양, 하마 등 대형포유류를 연간 1,700마리 이상 안락사 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친교배 방지도 있고 노화와 질병, 공간 부족이 이유인 경우도 있다.

코펜하겐 동물원도 동물 안락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동물원은 2012년 초에도 두 살 남짓한 표범 두 마리를 근친교배를 막는다며 안락사시켰다. 마리우스가 화제가 된 건 부모와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락사 시켜 사자 먹이로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안락사가 최선의 방법인가

그래도 시민들은 마리우스의 안락사가 최선의 방법인지 반문하고 있다. 마리우스를 야생으로 돌려보내거나 다?동물원에 이송할 수는 없었는지,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하더라도 최소한 볼트 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약물주사 등을 통해 고통만은 없앴어야 한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코펜하겐 동물원의 안락사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고 인간 편의적이며 비윤리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EAZA의 해명은 이렇다. 안락사는 우선 근친교배를 막을 수 있다. EAZA 내 동물원에 마리우스의 형제자매들이 있으므로 다른 동물원으로 이송하는 것은 근친교배를 막을 수 없다. 안락사가 아닌 피임을 선택할 경우 유전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마리우스가 다른 기린들의 건강한 생존을 위한 동물원 내 여유공간을 빼앗는다. 마리우스가 아닌 암컷을 피임할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 약물 주사 등이 기린 번식을 위해 중요한 암컷의 건강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 마리우스를 아프리카 등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있으나 어차피 적응할 수 없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EAZA 회원 동물원이 아닌 곳으로 보낼 경우 EAZA가 규정하고 있는 동물복지 조건 등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고, 서커스 등 열악한 시설로 팔려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영국이나 스웨덴 동물원이 마리우스를 건네달라고 했지만 코펜하겐 동물원은 EAZA 회원 동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야생동물을 위한 '제2의 서식처'를 지향하는 EAZA의 관점이라면 약물주사 보다 볼트 건이 더 나은 이유도 있다. 볼트건을 통한 안락사가 동물원 내 육식동물들의 건강을 위해 야생에서나 맛볼 수 있는 신선한 고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EAZA는 안락사한 모든 동물의 사체를 육식동물의 먹이로 주고 있다. 안락사에 약물을 사용할 경우 사체가 오염돼 먹이로 쓸 수 없다.

코펜하겐 동물원의 레슬리 딕키 이사는 BBC와 인터뷰에서 "동물 보호라는 것은 단순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느끼기에 항상 깨끗한 일도 아니다"라면서 "마리우스의 안락사는 슬프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우리는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돈 되는 동물은 살아 남는다

하지만 여전히 "EAZA가 근친교배만을 막기 위해 동물 안락사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영국 시민단체 '사로잡힌 동물 보호협회'(CAPS)의 리즈 타이슨 이사는 EAZA의 안락사 시행을 비판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타이슨 이사는 최근 CNN기고를 통해 "EAZA가 위선적인 모습으로 시민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증거로 든 것은 EAZA 내 동물원들에 있는 백사자다.

백사자는 근친교배에 의한 돌연변이종으로 알려져 있다. 털색 유전자의 색소 결핍으로 매우 드물게 이런 사자가 태어난다. 이 때문에 EAZA는 원칙적으로 백사자끼리 교배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영국 웨스트미들랜드 사파리공원과 파라다이스 야생공원은 보호하고 있던 백사자를 서로 교배시켰다. 두 동물원은 EAZA 회원 동물원이며 EAZA는 이들을 제재하지 않고 있다고 타이슨 이사는 지적했다. 이어 그는 "왜 근친교배란 이유로 마리우스는 죽고 백사자들은 살아 남았을까"라고 물었다. 이유는 하나다. 백사자가 마리우스보다 관객들의 눈을 더 많이 사로 잡아 동물원 경영에 훨씬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웨스트미들랜드 사파리공원은 2012년에 백사자 네 마리를 일본 서커스단에 팔기까지 했다. EAZA가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행위지만 사파리공원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타이슨 이사는 "마리우스도 백사자들처럼 다른 곳에 팔렸다면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 있다"면서 "마리우스가 살아날 가능성이 철저히 봉쇄됐다"고 지적했다.

타이슨 이사는 마리우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EAZA 내 동물원들이 처한 '과잉 개체수' 문제를 들었다. CAPS에 따르면 EAZA 동물원들이 수용하고 있는 동물 개체수가 적정 수준보다 약 7,500~20만 마리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적정 수준이라는 것은 동물원 시설이 양육, 관리, 보호할 수 있는 동물 개체수를 말한다. 그는 "근친교배가 동물원 안락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할 것"이라며 "나머지는 단순히 공간부족이라는 이유로 몰래 도살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더 끔찍한 건 안락사 당한 동물들의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막 태어난 새끼들이라고 타이슨 이사는 지적했다. 어린 동물들은 관객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동물원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관객 입장료 수익과 직결되는 아기 동물의 자리를 계속 마련하기 위해 안락사를 '동물 순환시스템'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돈 안 되는 동물은 죽고 돈 되는 동물만 살아남는다는 것이 마리우스 죽음의 진실일지도 모른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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