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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신호탄으로 1000만 관객 10년, 한국 영화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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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신호탄으로 1000만 관객 10년, 한국 영화 빛과 그림자

입력
2014.02.2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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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관객이라니… 당시 한국 인구가 얼마였나요." 지난해 11월 14일 오후(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영화학교 런던영화아카데미 특강에 나선 강우석 감독이 '실미도'의 흥행 수치를 입에 올리자 나온 질문이었다. "4,000만 명 가량"이라는 답변이 나오자마자 학생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와우"를 연발했다. 강 감독을 바라보는 눈빛은 호기심에서 경외감으로 변했다. 2003년 12월 '실미도'의 개봉을 앞두고 강 감독이 영화인들에게 "1,000만 관객을 자신한다"고 공언했을 때 충무로의 반응은 놀라움보다는 황당함이었다. "미친 것 아니냐" 또는 "농담이 지나치다"는 반응을 불러냈던 꿈의 숫자는 2004년 2월 19일 현실이 됐다.

지난 19일 '실미도'가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지 만 10년이 됐다. '실미도'는 뒤이어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에게 그 해 4월 3일 덜미를 잡히며 '42일 천하'만 누리고 결국 역대 흥행 9위(최종 관객 1,108만1,000명)로 내려앉았으나 첫 1,000만 영화로서 충무로에 남긴 그림자는 짙고도 넓다.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산업의 역사는 '실미도'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실미도'는 제작 전부터 화제를 낳았다. 독재정권의 폭정에 가려졌던 실미도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다는 점만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제작비 100억원이라는, 당시로선 엄청난 물량공세를 펼쳐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안성기 설경구 정재영 허준호 등 주연급 배우 여럿을 한 자리에 모아 당대 최고의 흥행술사 강 감독이 메가폰을 쥔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온갖 흥행 기록을 격파해나갔다. 배우들이 북한 인민군의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 때문에 용공시비가 일었고, 북파 공작원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감독 등 제작진의 신변에 위협이 가해지기도 했다. 자신이 설립한 영화사 시네마서비스로 CJ엔터테인먼트와 시장을 양분했던 충무로 파워맨 강 감독의 입지는 더욱 굳어졌다.

'실미도'이후 '1,000만 영화'는 대박의 가늠자이자 충무로의 욕망이 됐다. 규모의 경제를 내세운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자리를 잡았다. 제작비 100억원을 넘긴 영화들이 매년 전국의 멀티플렉스를 고속도로 삼아 동시다발적으로 상영됐다. 2006년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와 '괴물'(감독 봉준호)이 1,000만 신화를 이었고 지난달 '변호인'(감독 양우석)이 10번째(할리우드영화 '아바타' 포함)로 1,000만 클럽에 가입했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실미도'는 산업으로서의 한국영화가 가능한지 의문이 있을 때 긍정적인 답을 준 영화"라면서도 "대규모 전국 개봉, 대기업의 독과점 심화 등 부정적 유산도 남겼다"고 평가했다.

'실미도'의 1,000만 관객 달성은 충무로 양극화의 신호탄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1,000만 영화의 등장은 한국영화의 산업 경쟁력을 의미하기에 긍정적이었다"면서도 "흥행과 작품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던 예전과 달리 오직 자본의 논리만 좇는 경향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국내 영화상영 구조가 블록버스터 위주로 재편되면서 독창적인 창의력을 지닌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주장이다.

10년 전 1,000만 영화의 탄생은 일대 사건이었으나 이제 1,000만 관객은 연례 행사가 돼가고 있다는 해석도 조심스레 나온다. 지난해 '7번방의 선물'과 지난달 '변호인'의 1,000만 영화 등극이 그 징표라는 것이다. 전찬일 아시안필름마켓 부위원장은 "한국영화의 양적 질적 성장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며 "매년 2편의 1,000만 영화가 출현하고 1,500만 영화가 탄생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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