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의 탄압으로 서울시 구로동 일대 농지를 빼앗기고 저항한다는 이유로 옥고까지 치렀던 농민과 그 후손들이 47년 만에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반세기 동안 이들을 옥죈 가난의 고통과 한(恨)은 배상금만으로 풀리지 않는 모습이다.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강민구)는 지난 11일 농민과 유족 291명의 청구를 받아들여 "국가는 650억5,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판결이 확정되면 단일 소송으로는 최대 배상금이며,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실수령액은 1,100억원대에 달한다.
농민들의 비극은 1961년 9월 박정희 정권이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 과정에서 이 일대 땅 30만평을 강제수용하고 판잣집을 철거하면서 시작됐다. 내쫓긴 농민들은 64년부터 67년 3월까지 "1950년 4월 농지개혁법에 따라 적법하게 분배해 받은 땅을 강제로 뺏는 건 위법"이라며 잇따라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67년 1심 재판부는 "절차상 적법하게 토지가 분배됐다"며 농민들 손을 들어줬지만, 69년 항소심은 "농지 분배 과정에 이의신청 등 절차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고심을 거듭하던 대법원 70년 3월 "농지개혁법에 따라 적절히 분배됐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부합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 농민들이 땅을 돌려받을 길이 열렸다.
이 때 돌연 박 전 대통령이 나섰다. 그는 대법원 선고가 나자 법무부 장관에게 "소송이 패소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고, 공안당국은 70년 여름 농민들을 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해 사나흘씩 강압 수사를 벌였다. 당시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를 보여주면서 "감옥 갈래, 소송 포기할래"라며 협박했다. 결국 대부분의 농민들은 소송을 포기했고, 끝까지 저항한 41명은 사기 및 공문서 위조 등 혐의로 기소돼 26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소송을 제기한 농민 대부분은 세상을 떴다. 남은 자식들은 가난까지 대물림 했지만, 생업 중에도 부모들이 제기한 소송을 기억했다. 한무섭(72) 구로동 명예회복추진위원회 대표는 "소송을 낸 농민 291명 중 생존자는 2명뿐"이라면서 "나도 일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억울해 하시던 부모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한 대표를 중심으로 농민 유족 등 155명은 포기하지 않고 2006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2008년 7월 진실규명(재심권유) 결정이 내려졌다. 이들은 이를 근거로 2010년 서울고법에 재판을 다시 열어줄 것을 신청했다. 그 사이 사기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농민 21명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 땅에 대한 감정 평가를 실시하고 재판연구원을 총동원해 과거 기록까지 검토했다. 현행 농지법 상 농민과 유족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지만, 예비적으로 청구한 손해배상은 받아들여 국가가 불법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했다. 변호인단은 "국가가 상고할 것으로 예상되고, 원고측 주장 중 일부를 보완해 대법원에 다시 판단을 구할 부분도 있다"며 "오랜 시간 큰 고초를 겪은 원고들을 위해 최대한 빨리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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