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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2월 21일] 공동체 그리고 '또 하나의 올림픽'

입력
2014.02.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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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중순이었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햇볕 좋은 날 런던 트라팔가 광장을 찾았다가 군중들에 사로잡혔다. 오렌지 향을 품은 햇살이 감미롭기만 한데 옴짝달싹 못하다니. 속이 끓을 즈음에 지붕 없는 2층 버스가 줄지어 지나갔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영국 올림픽 선수단이었다. 런던올림픽이 끝난 지 한 달 가량이 지나 축하 행진이라니. 뭐든 빨리빨리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과 참 다르다는 섣부른 예단을 했다.

영국 생활은 숱한 인상을 남겼다. 학교에서 종종 마주친 한 동양계 남자도 그 중 하나였다. 대학원생이 분명한 그는 눈이 불편했다. 눈꺼풀이 지긋이 내려앉은 용모만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한 여자가 그의 팔짱을 끼고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열람실이든 휴게실이든 졸졸 따라다니며 그의 곁을 지켰다.

여자는 마음을 다해 남자의 공부를 돕는 듯했다. 화사한 웃음이 그녀 입술을 떠나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부럽기도 했다. 사랑을 나누며 학업 성취도 함께 하다니. 다음날 남자와 도서관에서 또 마주쳤다. 누군가 또 그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금발의 다른 여자였다. 그 다음엔 제3의 여자가 그의 곁에서 웃음꽃을 터트렸다. 남자의 팔이 바통이라도 되는 양 일군의 여자들이 릴레이 하듯 그와 '도서관 데이트'를 즐겼다. 천하의 바람둥이였구나… 묘한 질투가 일었다.

오해는 곧 풀렸다. 여자들은 남자의 같은 과 친구들이었다. 눈 때문에 공부에 제약이 있는 남자를 위해 서로 돌아가며 학업을 돕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연을 치정 어린 다각관계로 받아들이다니. 변명하자면 오해할 만도 했다. 여자들은 단 한번도 얼굴을 구기지 않았다. 대신 청량한 웃음으로 남자와 밥을 먹거나 책을 찾아서 읽어줬다.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돕는다는 기쁨만으로도, 함께 누군가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행복에 젖어 있는 듯했다.

신체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영국의 보편적 문화였다. 대학 당국은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하던 한 여학생에게 독채나 다름없는 단층 기숙사를 배정했다. 영국의 관광상품이자 서민의 발인 2층버스 출입구는 계단이 없고 높이도 보도블록의 키와 엇비슷하다. 휠체어가 쉬 오르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다.

다시 2012년 9월 중순 어느 날의 트라팔가 광장. 유니언잭 깃발이 휘날리는 2층버스 위에서 선수들은 손을 흔들었다. 휠체어에 앉아 각자의 메달을 들고 여러 차례 포효하는 선수들도 섞여있었다. 영국 올림픽 선수단의 '개선 행진'이 한 달 만에 치러진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그 해 9월10일 런던 패럴림픽의 막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행사를 마련한 것이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 선수들이 뒤섞인 모습 앞에서, 그들에게 갈채를 보내고 사진을 찍는 영국인들을 바라보며 '공동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피부 색깔과 성별과 취향과 출신 지역 등 갖은 차이와는 무관하게 함께 한 곳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런던의 9월은 내게 그렇게 가르쳐줬다.

패럴림픽은 2차 세계대전 때 부상으로 장애를 얻은 군인들에게 재활 의욕을 북돋기 위해 시작했다. 하반신 마비를 의미하는 'Paraplegic'과 올림픽(Olympic)을 합성해 패럴림픽(Paralympic)이 탄생했는데 최근은 'Para'의 의미를 'Parallel'(평행한, 동등한)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장애인 올림픽'이 아닌 '또 하나의 올림픽'인 '동등 올림픽'인 셈이다. 영국인들이 올림픽과 패럴림픽 선수단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붙들고 있는 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동계 동등 올림픽'이 3월7일부터 16일(현지시간 기준)까지 소치에서 펼쳐진다. 차별은 구별에서 나온다. 올해부터는 선수단 환영 행사를 따로 나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패럴림픽이 올림픽 개최지에서 열리기 시작한 때는 1988년이다. 다들 알겠지만 장소는 서울이었다. 1988년 서울에서 발화된 동등의 인식을 우리가 다시 일깨웠으면 좋겠다.

라제기 문화부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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