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퇴직을 한 지 3년이 넘었다. 아내와 딸의 잔소리가 점점 는다. TV를 왜 그렇게 크게 켜느냐, 뭘 물어도 대답을 왜 하는 둥 마는 둥 하느냐고 타박이다. 그런데도 정모(63)씨는 '내가 정말 그랬나' 싶어 답답하다. TV를 켤 때 점점 눈치가 보이고 대화에 자신이 없어진다. 그러다가도 종종 울컥 화가 난다. 이상해졌다고 병원 한번 가보라는 식구들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진단을 받았다. 노인성 난청이었다.
나이 들어 이런 경험 하는 사람이 많다. 문제는 "늙으면 다 그런 거지" 하며 잘 안 들리는 것을 체념하듯 버려두는 것이다. 그러나 노화로 청각 기능이 떨어지는 노인성 난청은 단순히 소리를 잘 못 듣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칫 치매를 부를 수 있다.
난청 상태를 오랫동안 방치하면 뇌로 전달되는 소리 자극이 점점 줄어든다. 안 그래도 조금씩 노화하고 있는 뇌에 청각 자극마저 감소하면 인지능력이나 기억력이 더 빠르게 떨어진다. 특별한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노인일수록 친구,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나 TV 시청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청력 없이는 즐기기 어려운 생활 패턴이 반복되는데도 난청을 그대로 두면 노인은 점차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이 심할수록 치매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한이과학회에 따르면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와 국립노화연구소 공동연구팀이 노인 639명을 평균 12년 동안 관찰하고 청력과 인지기능을 검사해 노인성 난청과 치매의 연관성을 최근 밝혀냈다. 가벼운(경도) 난청은 청력이 정상인 노인에 비해 치매 발생이 1.89배, 중간 정도 난청은 3배, 심한(고도) 난청은 4.94배 높게 나타났다. 60세 이상에서 생긴 치매의 3분의 1 가량은 난청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보였다.
노인성 난청으로 떨어진 청력은 되돌릴 수 없다. 김성근 김성근이비인후과 청각클리닉 원장은 그러나 "보청기를 쓰면 청력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연구팀 역시 보청기를 사용한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의 인지기능 점수를 비교한 결과 보청기 사용 그룹이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보청기 사용이 인지기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제 보여준 것이다.
김 원장은 ▦조용한 곳에서 대화하는 것은 괜찮은데 교회나 호텔 로비 등에선 말이 선명하게 들리지 않거나 ▦'간다' '잔다' '판다' '산다'처럼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거나 ▦TV 뉴스는 잘 듣는데 드라마의 대사는 또렷하게 듣지 못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곧바로 이비인후과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권했다.
하지만 불편하다거나 써도 별 소용 없다거나 하는 선입견 때문에 보청기 사용을 꺼리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김 원장은 "청력 손실 정도뿐 아니라 난청의 유형과 원인 등을 종합적으로 검사해 자신에게 맞는 보청기를 선택해 꾸준히 사용하면 청력 관리에 실패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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