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기차역에서 북동쪽으로 10여㎞ 떨어진 항미원조열사능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방중때 송환 의사를 밝혀 경기 파주 적군묘지에서 이장될 중국군 유해 425구의 안장지로 유력한 곳이다. 정문 양쪽에 걸린 '1950'과 '1953'이란 대형 숫자판은 이 곳이 한국전쟁 당시 숨진 중국군의 묘지라는 것을 웅변한다.
능원 안으로 들어서면 중국 국가가 연주돼 나왔다. 한 가운데 23m 높이의 기념비가 우뚝 서 있었고, 기념비 옆으론 깃발을 들고 돌진하는 장병들의 조각상이 있다. 기념비 앞엔 누군가가 올리고 간 꽃과 과일, 생수, 과자 등이 놓였다. 비문에는 '1950년 6월 미국이 대만을 점령한 것과 동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며 '중국 인민지원군은 조선인민군과 함께 조선 인민들이 경애하는 영수 김일성 동지의 영도 아래 힘겨운 전투를 벌여 결국 미국 침략자를 물리쳤다'고 새겨 놓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지난 2010년 5월 이곳을 들렀다.
중국에선 '특급전쟁영웅'으로 추앙 받는 황지광(黃繼光)과 양건쓰(楊根思) 등 한국전쟁 당시 숨진 123위의 중국군 무덤은 이 기념비를 에워 싼 소나무 밭 아래 조성돼 있다. 둥그런 봉분을 모두 콘크리트로 씌운 모습이 특이하다. 이 묘역 뒤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곳이 이르면 3월 말 송환될 중국군 유해가 안장될 곳으로 검토되고 있다.
기념비 동쪽엔 한국전쟁 당시 숨진 소련군 묘역이 별도로, 서쪽엔 항미원조열사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관엔 한국전쟁의 발발, 전개 과정, 중국군의 역할 등을 보여주는 당시의 문건과 사진, 유물들을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엔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조선내전이 발발하자 미군이 조선을 침입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남조선 총통'으로, 신성모 제2대 국방부 장관은 '남조선 국방부장'으로 표기돼 있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사진엔 '1950년 6월28일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해방시켰다'고 설명해 놨다.
'경애하는 마오쩌둥(毛澤東) 동지'로 시작하는 김일성 당시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중국군 지원 요청 서한과 '조선인민의 해방전쟁을 돕고 미 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동북변방군을 중국인민지원군으로 개편, 즉시 조선 경내로 출동하라'는 내용을 담은 마오 주석의 1950년 10월8일 명령서도 눈길을 끌었다.
'최후의 일전'이란 설명문은 '정전협상이 거의 합의에 이르렀음에도 남조선군은 우리(중국) 포로들을 2만7,000여명이나 무리하게 억류했다'며 '남조선군의 콧대를 꺾기 위해 금성(金城)전투(1953년 7월 강원 화천군 일대에서 벌어진 국군과 중국군의 전투)를 일으켜 적군 5만2,000여명을 섬멸함으로써 정전협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주중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송환 뒤는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지만 우리 국민의 정서는 충분히 전할 계획"이라며 "여러 표현들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측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선양=글·사진 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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